화엄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알라딘에 이런 책까지 있는 줄 몰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괘불을 처음 접한 후 불교 미술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다가 집어 든 책이다.
어제 박물관에 가서 직접 샀다.
지금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괘불은 부석사의 괘불이고 화엄사 괘불은 작년에 전시된 모양이다.
책값은 6000원이라 저렴한 편이지만 워낙 분량이 작아 아쉬운 점도 있다.
그렇지만 화엄사와 거기 소장된 괘불에 대해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괘불은 어감이 별로 안 좋은데, 괘종시계처럼 걸어 놓고 보는 불화를 뜻한다.
조선 후기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천도제, 수륙제 등의 불교 행사가 많아졌다.
죽은 사람이 많으니 종교에서 위로를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규모의 야외 법회를 열기 위해 생겨난 것이 바로 괘불이고 조선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규모는 책에서만 봤다면 제대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정말 크고 길다.
화엄사 괘불은 특히 큰데 무려 12m에 달한다.
그런데 괘불도 전형화된 도식이 있는지 거의 모든 절의 괘불들이 다 비슷한 모양이라 감별하기가 좀 어렵다.
화엄사 괘불은 다섯 명의 화승이 모여 무려 17년 동안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얼마나 대규모의 작업이었을지 알 만 하다.
재밌는 건 괘불을 그리기 위해 시주를 한 사람들이 모두 성이 없는 하층민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과연 조선 후기 노비들이 시주를 할 만큼 경제력이 성장했는지 아니면 노비들이 주인을 대신해 시주를 한 것인지 연구해 볼 만 하다고 언급했다.
비단 정치 뿐 아니라 이런 세세한 점에서까지 시대상을 연구하다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실체가 좀 더 명확하게 잡힐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서 여러 분야의 학제간 연구가 중요한 모양이다.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을 편 나라인데 대체 이런 대규모의 괘불이 어떻게 활성화 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임진왜란 당시의 승병에 있다.
승려들이 군사를 조직해 왜군과 싸웠기 때문에 절의 파괴도 컸지만 그만큼 나라에서 공을 인정받아 화엄사의 경우 효종과 숙종 등에게 직접 편액까지 받을 정도로 위상이 올라갔다.
그러나 역시 화엄사처럼 큰 절도 괘불을 완성하기 위해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린 걸 보면 절의 형편이 넉넉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승병장 하면 휴정이나 유정 스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당시 양대 계파가 휴정과 화엄사의 벽암 각성 스님이었다고 한다.
이 분은 나중에 무슨 대장이라는 직첩까지 받아 화엄사 중건에 큰 힘을 보탰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화엄사에 본 석등이나 4사자 3층 석탑 등이 생각난다.
특히 4사자 3층 석탑은 흔히 보기 어려운 모양이라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얇은 책이지만 화엄사의 유래와 괘불에 대해 또 조선 후기의 사회상에 대해 핵심을 짚어 주는 좋은 책이다.
박물관에 가면 이런 도록들이 많아 책 고르는 재미가 있고 큰 도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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