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4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전작인 <광해군>을 퍽 재밌게 읽은지라 도서관에서 또다른 저작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집어 들었다.
일단 이 책은 자신의 전공인 만큼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인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당시의 조선 사정, 명과 청의 관계 등을 여러 저작들을 참조하여 상당히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친다.
꽤 수준이 높은 책인데도 내용 자체는 쉽고 쉽게 읽힌다.
가끔 잘 안 쓰는 한자어들이 등장해 사전을 찾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이런 부분들은 저자가 따로 각주를 달아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익히 알려진 흥미진진한 사건이라 그런지 마치 소설책 읽듯 막힘없이 한 번에 쭉 읽었다.
무엇보다 명나라 쪽 시선에서 조선을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명에도 임진왜란은 큰 영향을 끼쳤던 탓에 꽤나 많은 저작들이 있었다.
명측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적어도 임진왜란이 이긴 전쟁이었네, 하는 소리는 못할 것 같다.
전작인 <광해군>에서도 저자는 근래에 높히 평가받고 있는 중립외교가 실상 내치로 이어지지 않아 인조반정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광해군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이덕일이 책을 보면 당시 신민들은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반정이 일어나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인조반정을 일방적으로 매도한다.
(이런 몰아가기 논법이 이덕일의 특징이다. 혜경궁 홍씨를 마치 남편을 죽인 권모술수가 식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광해군이 중립외교에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후금의 상황이 조선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관망하는 자세로 두고 봤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조선 역시 비록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우긴 했으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기까지 집권자들의 기본적인 외교 방침은 적당한 화친 유지였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묘호란 당시 침입 다음날 벌써 화친 얘기가 나왔고, 병자호란으로 아예 조선에게 신복을 요구하게 됐을 때 과연 광해군 조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저자는 광해군이 실리 외교를 취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후금을 오랑캐로 인식했고 명 조정의 파병 요구에 응해 군사 만 오천명을 동원했음을 지적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인조의 서인 정권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선조가 직접 전란을 체험하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군사적 식견을 쌓았다고 말한다.
선조나 조선 조정이 명군을 재조지은의 천군으로 인식한 것은, 민심의 이반이나 의병 활동으로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어쩌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만약 명군이 파견이 없었을 경우 적어도 선조의 왕권 유지나 조선 왕조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득권층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명군의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선조는 명군의 오만방자함과 기만술을 끝까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또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도 국난을 맞아 국가를 여전히 유지할 만큼 기반이 단단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조 때부터 여진족에 대한 간첩 활동은 중시됐고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평가한다.
결국 명에 대한 사대나 재조지은, 친명배금 정책은 명분이란 것을 조선 조정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실제적인 관리들이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재야 유림들의 명분론이 국가의 발목을 잡은 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명분론의 승기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국가의 정책에 딴지를 거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조선이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주자학을 교조화 시킨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명은 양명학이 위세를 떨치고 포르투칼의 은이 유입되어 상품의 유통이 활발했다.
조선에 파병을 왔으나 상점이 없고 화폐가 유통되지 않아 명의 상인들이 군대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명의 관리들은 주자학이 이미 한물 간 학문이고, 조선은 문약하여 국방에 힘쓰지 않는다고 질책했으며 상거래가 전무하다고 조선의 후진성에 대해 여러 차례 충고한다.
아마도 명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분위기나 관리들의 태도가 무척 답답했을 것 같다.
제일 인상깊던 대목은, 조선이 고구려 때 수당을 위협할 만큼 강국이었는데 오늘날 어찌 이리 몰락했냐고 놀랐다는 부분이었다.
적어도 고구려는 중국 문화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성을 가지고 국방력도 뛰어난 독립된 나라였음을 중국인들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회가 정체되고 하나의 학문이 교조화 되어 나머지는 모두 이단시 되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국가를 퇴보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모문룡이라는 명의 장수에게 조선 조정이 휘둘린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과연 책봉이라는 문제가 혹은 명의 승인을 받는 문제가 국가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일개 장수에게 기만을 당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을까?
결국은 광해군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펴다가 쫓겨난 것이고 선조나 인조 역시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권위 확보를 위해 명에서 목을 맸다.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유폐시키면서 왕위에 오른 태종 같은 사람도 있는데 광해군이나 인조가 왜 그렇게 명의 승인에 전전긍긍 했는지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태종처럼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그들의 정치력이 아쉬울 뿐이고 무엇보다 명분론에 함몰되어 명군의 끔찍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자의 나라, 재조지은의 천군이라고 그들의 승인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았던 양반들의 좁은 식견이 안타깝다.
어쩌면 현재 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종속성도 후손들에게 한심하다고 비판받을지 모르겠다.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까지 동아시아의 격동기를 밀도있게 분석한 꽤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서술 솜씨가 뛰어나 전문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읽기 쉽게 문장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