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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 고생물학자 굴드 박사의 자연사 에세이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동광.손향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학자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유명 과학자들, 이를테면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마빈 해리스 등의 책을 읽을 때마다 놀라는 일이지만 학문적으로도 훌륭한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글을 잘 쓰는지 그들의 문학적 소양과 문장력에 감탄하게 된다.
번역문인데도 불구하고 비문이 없고 비유나 유기적인 구성 등이 마치 유명 소설가의 잘 쓰여진 소설처럼 한 편의 탁월한 글이 된다.
역시 세계적인 사람들은 다르구나 감탄하게 된다.
스티블 제이 굴드 역시 참 글을 잘 쓴다.
이런 훌륭한 문장들을 직접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0대면 아직은 이른 나이 같은데 그의 빠른 죽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추럴 히스토리> 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데 이런 훌륭한 글이 실리는 잡지를 나도 구독하고 싶다.
그가 고생물학자이기 때문에 다윈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유전학을 봐도 그렇고 현대 의학이나 생물학은 다윈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이번 주제도 역시 다윈의 진화론이다.
특히 가톨릭 교회가 비오 12세의 어설픈 가능성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완벽한 승인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제일 큰 소득이었다.
이제 가톨릭 교회는 갈릴레오를 파문하려 했던 과거의 잘못을 씻고 생명 창조의 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진보하는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을 거부하고 성경 무오류설을 믿는 교파가 일부 근본주의에 국한된 것임을, 또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임을 명백히 밝힌 굴드의 글을 시원하게 읽었다.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 역시 진화론 거부를 마치 신앙심의 한 표현인양 착각하고 있지만, 그래서 마치 무슨 순교라도 하듯이 진화론을 비난하고 있지만, 굴드의 말대로 교권과 과학은 겹치지 않는다.
과학이, 혹은 진화론이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생명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밝히는 학문인데 반해 종교는 어떻게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분야다.
설마 그 하늘나라가 정말 지구 밖에 있는 물리적인 어떤 곳이라고 믿지는 않겠지?
그런데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정말로 성경에 나온 하늘나라가 대기권 밖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댄다.
굴드의 표현대로 종교가 소중한 것은 그들이 물리적인 세상의 비밀을 성경에 근거하여 밝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고결한 정신, 배려심, 희망, 연민, 애민 정신 등등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해 주고 우리가 모여 사는 이 공동체를 보다 아름답게 이끌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독특한 의식의 세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관찰력에 깜짝 놀랬다.
과거에는 그저 유명한 화가일 뿐, 과장된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남긴 노트를 보면 그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논리적인 연결 체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역시 그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관찰력으로 세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천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유명한 <모나리자>에는 신비한 미소도 매력적이지만 그 배경은 그가 평생 연구한 지질학의 성과를 살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구석기 시대 벽화에 대해서도 굴드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보통 크로마뇽인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인종이므로 그들의 예술적 재능에 깜짝 놀래게 되고 거칠게 표현될수록 시대가 앞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탄소 방사능 검사를 해 보면 마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이 르네상스 시대의 정교한 그림보다 뒤떨어진 게 아니듯 기교와 시대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 한 집단의 유전적 동질성은 10만 년 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인들의 예술적 재능은 현대인에 비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의 벽화 그림에 우리가 탄복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선형 진보 이론을 거부한다.
무척추 동물에서 척추 동물로,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를 거쳐 조류 그리고 포유류까지, 심지어 영장류의 정점에 바로 인간이 서있다는 관념은 전적으로 인간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각자 처한 환경에 적응한 것이기 때문에 진화가 진보가 될 수는 없다.
의식이 인간의 독특한 특성일 수 있으나, 의식이 반드시 우월한 것, 진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재치있는 지적처럼 어쩌면 우주인은 지구를 박테리아의 세상으로 볼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일직선 진화한 게 아니라 곁가지인 인간유사종들이 많이 있었는데 최종 승리자가 되어 현재까지 남은 종이 바로 지금의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발전은 모든 종이 그렇듯 일직선 상으로 쭉 올라온 게 아니다.
우리는 최소 여섯 종의 인간유사종이 있었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한 이래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로 각자 발전한 호모 에렉투스가 진출했으며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들과 같이 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사피엔스들을 물리치고 현재의 안정적인 집단을 이루었다.
옛날에는 네안데르탈인에서 크로마뇽인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른 계통수를 가진 곁가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인간은 고생대의 삼엽충, 중생대의 공룡처럼 그저 신생대의 짧은 시기 동안 지구에 많은 후손들을 퍼뜨린 포유류의 한 종에 지나지 않는 걸까?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이래 이처럼 충격적인 혁명도 없을 듯 하다.
번역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은 책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자연사를 들여다 본 좋은 책이다.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이자 저술가가 일찍 세상과 작별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굴드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