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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 - DNA와 진화의 확고한 증거들
션 B. 캐럴 지음, 김명주 옮김 / 지호 / 2008년 10월
평점 :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 의 저자가 쓴 책.
유전학 교수라고 한다.
앞의 책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라와 있는데 기회가 안 돼서 못 읽었다.
이 책으로 미루어 보아, 이보디보 역시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수준은 마이클 셔머의 <왜 다윈이 중요한가> 가 적당한 것 같다.
불행히도 말이다.
나는 대학에서 유전학을 배웠고 지금도 학문적으로는 아니지만 임상에서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당연히 유전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조금만 깊이 들어가는 책을 읽게 되면, 내 지식의 깊이가 상당히 얕다는 것을 깨닫고 허걱 놀라고 만다.
유전학, 생화학, 세포학 이런 기초 과목들을 분명히 대학에서 수료했는데도 왜 이런 대중 교양서가 어려운 것일까?
이런 걸 보면 의사들 중 상당수가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창조론을 믿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제 Mr. suh 가 나사의 연구원이 교회에서 진화론의 허구와 창조론에 대해 간증했다고 하던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당연히 진화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이 붙으면 세세한 부분까지 자신있게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월리스 같은 위대한 학자 역시 지구가 둥글다는 너무나 명확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미친 놈과 싸우다가 홧병에 걸리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는 만큼 평범한 내가 논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진다고 해도 크게 우울해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즉 논쟁주의자들은 누구와 붙어도 절대로 지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 대신 신념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진화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되는 부분은 자연선택이 무작위적이며 돌연변이가 해롭다는 것이다.
지적인 설계자가 없다면 결코 지금의 최적 조건으로 형상화 되기 어렵다는 것.
흔히 바람이 불어 보잉기가 저절로 조립될 수 없다는 비유를 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자연의 선택압이야 말로 종의 변이에 관여하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이고 그 기전이 바로 돌연변이다.
인간의 게놈은 70억개쯤 되는데 176개의 비율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개체이고, 심지어 쌍둥이도 동일하지 않다.
중요한 기능을 가진 유전자 (이를테면 분화를 결정하는 도구 유전자) 들은 돌연변이로부터 보존되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아미노산이 여러 개의 코돈으로 암호화 되어 있다.
유전자 중복이 종의 항상성을 유지시킨다.
자연의 선택압은 종간의 변이를 일으키는 변수로 작용한다.
돌연변이가 자연 환경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면 그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가 번식하여 자신의 돌연변이를 간직한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런 말을 했다.
아메바에 비해서 인간이 더 우월한 존재인가?
인간은 가장 고등한 동물인가?
우리는 진화의 정점에 선 종인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명제이므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어, 도킨스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전학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진화는 결코 진보나 개선을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측면에서는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하여튼 모든 생명체는 더 우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연 환경에 맞는 존재만 멸종을 피하고 생존해 나간다.
저자는 모든 유전자가 현재의 환경에 적합하게 작용하므로 결코 앞으로의 변화를 위해 미리 예비해서 만들어 놓을 수 없고, 그런 이유로 처음부터 의도를 지닌 지적 설계자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화론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무신론의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종교인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종교는 지동설도 이겨냈고 우주선이나 달 탐사도 이겨냈다.
진화론 역시 결국에는 사실이기 때문에 종교가 포용할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거부할 경우 종교의 기반 자체를 흔들어 버릴 것이므로 결국에는 적당히 교리에 변형시켜 수용하고 말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집단은 아마 유타주에 있다는 아미쉬들처럼 시대를 거부한 소수파로 동정을 사겠지.
내 생전에 그 꼴을 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이로프랙틱, 즉 척추교정을 하는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어 어렸을 때 가볍게 앓고 지나갈 수 있는 홍역이 성인이 되서 걸리는 바람에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는데 확실히 미국은 이른바 대안의료라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우리나라 역시 한의학이나 동종요법, 허브 치료 등등의 대안의료가 있긴 하지만 범국민적으로 예방접종을 거부하자는 식의 주도권을 잡지는 못하는데 미국은 역시 모든 방면에서 다양한 운동이 있는 나라다.
척추교정은 막연히 구부정한 허리를 바르게 펴 주는 일종의 물리치료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근본적으로 모든 병의 원인이 신경에서 비롯되므로 신경이 지나가는 척추를 바르게 해 주면 신경이 눌리지 않아 병이 회복된다는 게 기본 개념이라고 한다.
병의 세균설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현대의학에 대치된다.
이 점은 한의학과도 비슷하다.
미생물에 의한 감염설이야 말로 현대 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병인론인데 한의학에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하여튼 이데올로기 혹은 철학, 몸의 내제된 생명력, 자기치유력, 정신력 이런 것들이 과학적 사실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게 참 한심스럽다.
책에 인용된 루리 파스퇴르의 말처럼, 상상력은 실험의 결과들에 의해 입증될 때만 비로소 하나의 이론으로 성립되지 않겠는가?
지식은 인류의 유산이라고 했는데 특정 종파나 집단의 이기심이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배척되야 한다는 현실이 슬프다.
유전자학이 농업이나 제약학, 심지어 친자 감별, 범죄자 식별에까지 이용되고 있는 21세기에도 이 모양이니,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얼마나 엄청난 권력과 싸워야 했을지 조금은 실감이 난다.
마지막에 나온 환경 오염과 남획에 대한 우려는 그런 것들이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생명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멸종으로 이끈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자연은 정화력을 가졌기 때문에 곧 회복될 거라는 막연한 위로가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을 정도로 생태계 파괴는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적어도 야생동물 밀렵이나 어류 남획 등에 대해서는 전 지구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점임이 분명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라고 정말 비장한 제목을 붙였는데 역시 학자가 쓴 글이다 보니 당위성이나 반박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유전학 내용을 설명한 부분이 대다수를 이루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가 쓴 이보디보도 읽어 보고 마이클 셔며의 <왜 다윈이 중요한가>도 다시 봐야겠다.
첨언하자면, 한 번 읽어서 100% 이해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는 것 같다.
내 경우는 한 번에 자세히 정독하는 것 보다는 틈틈히 반복해서 보는 쪽이 훨씬 기억에 오래 남고 읽기도 편하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는 것이, 한 권의 책을 정독하는 것보다 덜 지루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려운 책도 억지로 읽을 때가 많은데 선택 독서와 반복 독서를 하는 쪽으로 바꿔 보려고 한다.
방금 재독을 끝마쳤다.
첫번째 독서 때 미진했던 부분들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배경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다시 읽으니 비교적 쉽고 평이하게 써진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역시 내가 너무 게으르게 접근했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진화란 결국 돌연변이라는 기회, 그것을 전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연선택, 그리고 그 변이가 개체군에 확산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 이 세 가지의 조합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제 지적 설계자 대신 자연선택을 종의 다양성의 근원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돌연변이는 분명히 무작위적이나, 그 변이를 다음 세대로 전달시킬지 말지는 절대로 무작위적이지 않다.
오히려 해로운 변이는 제거하고 이로운 변이만 보존하는 방식으로 자연선택은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진화를 조정한다.
고세균과 인간의 공통 유전자의 존재야 말로 결국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진화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잡히는 느낌이 들고 읽다가 포기한 다른 책들 (진화하는 진화론, 생명 최초의 30억년) 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정말 다윈은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가장 혁명적이고 위대한 발상의 전환을 한 인물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