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 문명과 야만으로 본 중국사 3천 년
줄리아 로벨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중국사에 대한 냉혹한 비판이 돋보이는 책이다.
사실 나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 일견 서구인의 눈으로 본 비판적 시각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국수주의에 매도되지 않은 엄격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새겨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짚어 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외세 세력 추종자로 몰아 세우며 오히려 민족주의의 강화를 통해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려는 공산당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마음을 흔들었다.
올림픽에서 보여준 중국 관중들의 혐한주의도 왜곡된 민족주의의 발로이며, 중국를 개방시키리라 믿었던 인터넷이 오히려 폐쇄적으로 내부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중국의 이런 예를 봐도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역사 연구 태도는, 또 특히 민족주의는 보다 나은 진보를 위해 제거되야 할 이데올로기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중국 공산당은, 코뮤니즘의 이념 보다는 일당 독재라는 과거의 전제주의적 전통을 잘 승계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중국의 폐쇄성을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국경수비에 두고 있다.
만리장성이 과연 중국의 5천년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부심의 원천인가?
저자는 만리장성에 덧씌워진 환상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진나라 이전부터 장성을 쌓는 일은 계속되어 왔고, 현재 관광용으로 보여주는 벽돌로 쌓여진 부분은 명 때 보수된 일부 구간에 지나지 않으므로 근본적으로 만리장성은 벽돌 장성이라기 보다는 흙벽이라고 한다.
만리장성을 쌓느라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인민들의 무수한 피가 벽을 따라 쏟아졌으며 실제로 국경 수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에 그쳤다면 일종의 중국 문화 깎아내리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안에 숨겨진 중국의 팽창주의 욕구와 폐쇄적 민족주의, 문화 우월주의 컴플렉스를 짚어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수천년 간 지속된 그런 감정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중국인의 자부심 위에 덧씌워져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발달에 저해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21세기 현대 중국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만리장성으로 대표되는 중국인들의 역사 인식은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만리장성은 그저 단순한 문화 유산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은 중앙 아시아 유목민들의 역사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제나 중국인의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책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봐 왔기 때문에 막연히 유목민들은 중국 문화를 침범하는 오랑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비단 과거 역사 때문이 아니라, 현재 그들의 삶이 뒤쳐졌기 때문에 더욱 과거의 역사가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만일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세계 경제에 뒤쳐져 있다면 일본 역시 중국 문화권의 수혜를 받지 못한 초라한 문명으로 평가절하 됐을 것이다.
오늘날 그들의 자부심이 되는 상업주의, 장인정신, 독자적인 문화 등은 오히려 위대한 중국 문명, 특히 유교 정신에서 벗어난 이단적이고 한 수 아래의 소박한 이류 문명으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을 뿐더러 현재도 경제란에 허덕이는 유목민의 역사를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저자는 중국과 유목민의 대립을 대등한 입장에서 서술했고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서양인이라는 점이 그녀를 편견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시킨 것 같다.

흔히 터키인의 조상이라 일컫어지는 투르크인들, 즉 돌궐은 북위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선비족은 연나라를 세워 고구려와 분쟁했는데 모용씨, 탁발씨가 전연, 후연, 북연 등을 세워 중국 국경을 수시로 침범했으며 요와 금은 남쪽의 송나라와 함께 중국을 양분했으므로 송이라는 나라 자체가 통일 왕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몽골은 비록 13세기 이후 패망하여 중원을 넘겨 줬으나 그 후에도 끊임없이 명을 괴롭혀 가순제로 하여금 엄청난 길이의 성벽을 쌓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점을 주목하는데, 중국이 유목민과 교역을 거부하고 고립정책을 취할 때 장성의 길이는 하염없이 길어졌다.
물론 이것은 싸워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한 무제처럼 정복하러 원정길을 떠날 힘은 없고 자존심은 상하니 성벽을 쌓아 스스로 내부에서 고립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만리장성의 역사적 의의라고 본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국가 정책.
이 장성을 쌓기 위해 중국의 황제들은 수많은 물자와 인적 자원을 쏟아 부었고 실제로 효율적인 방어선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안전하다고 착각하면서 국가를 점점 수렁으로 몰고 갔다.
중국이 팽창 정책을 취할 때는 장성을 유목민들의 터전 안쪽까지 확장시켜 오히려 그들을 초원에서 쫓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농경으로부터 수백리 떨어진 곳에 장성을 세우는 행태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주민 보호를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침투해 성벽을 쌓고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한반도의 경우 완전히 중국화 되어 중국인의 문화를 내면화 시켰기 때문에 그들과 대항하는 유목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유교를 수용했으면서도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중국 문화에 함몰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킬 수 있었고 그 점이 고대에는 그들을 뒤쳐지게 했으나 근대 이후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고구려의 경우 학자들의 말마따나 다민족 국가였고 유목민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해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졌으며 기본적으로 중국 문화에 크게 복속되지 않았다.
그 점이 고구려를 중국과 대항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로 내려오면 사정이 달라지는데 일단 고구려처럼 초원에 영토가 없으니 유목민과 섞일 일도 없고 기본적으로 완벽한 농경 정착민이었으므로 중국인과 똑같은 입장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선진적인 중국 문명을 내제화 시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생존 방식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라 이후 한반도가 사대 외교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해된다.
가치관의 완벽한 공유라고 할까?
그러나 저자는 냉정하게도 중국이 안남, 중앙아시아,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역시 중국인에게는 그저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임진왜란 때 원정 온 명의 안하무인, 오만방자한 태도는 속국 미개인들에 대한 당연한 태도였으리라.
체면치레 하느라 조공 무역으로 항상 허리가 휘던 중국은, 역시 임진란 원정 때 어마어마한 은을 소비해 몰락에 한 몫을 거든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비교적 두꺼운 책이지만 마치 소설을 읽듯 흐름이 자연스럽고 주제가 분명해 읽기 편했다.
중간 중간에 한자나 중국 역사에 다소 무지한 면을 보여 역자가 정정한 부분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는 외국인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 보고 넘어갔다.
아마 한국인이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통사를 쓴다면 그들 눈에는 당연해 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리라.
특히 삼국지의 조조를 단순히 한의 장군으로 소개한 걸 보고 문화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
반갑게도 고구려의 이야기도 한 단락 나온다.
고구려가 중국 문화에 대항하는 유목 국가의 일종으로 언급된 것이다.
저자는 고구려와 다른 한반도 두 국가가 다른 성격의 국가였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문득 서구인이 쓴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에 대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이해타산 관계가 없는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우리의 역사는 어떤지 궁금하다.
만리장성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힐 수 있겠으나 중국 문명에 대한 통사로 훌륭하고 무엇보다 현재의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문화적 우월성에 대해 꼬집은 점은 저자의 탁월한 식견이 돋보인다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장성의 의미를 강조한 일본인이 쓴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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