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프스키와 뒤러 - 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
신준형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뒤러.
루벤스의 그 화려한 바로크 화풍도 좋지만, 뒤러의 완벽한 세부 묘사도 볼 때마다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마도 나는 화려한 색감에 자극을 받고, 저게 과연 인간의 솜씨인가 할 정도의 놀라운 기술력에 감탄하는 것 같다.
특히 뒤러의 자화상을 보면 마치 예수를 흉내낼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이 최고의 화가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그 자신감과 거기에 걸맞는 실력이 보이는 것 같아 너무나 마음에 든다.
워낙에 잘 생겼으니까.
명상적이고 처연하기까지 한 램브란트의 자화상과는 느낌부터가 벌써 다르다.

이 책은 뒤러의 가장 훌륭한 평론자인 독일인 파노프스키의 내제적 의미론, 즉 아이코놀로지를 비판하는 책이다.
흔히 그림을 아무 지식없이 관람하는 인식의 단계, 거기에서 상징 즉 알레고리를 찾는 아이코노그래피 (분석)의 단계, 그리고 작가마저 의식하지 못한 시대의 흐름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아이코놀로지 (해석)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르네상스 그림들은 특히 종교적 도상화가 많기 때문에 개는 정절을 의미하고 굴은 최음제라는 식의 관습적인 알레고리를 이해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반면 근대 그림은 특히 추상화의 경우 색감과 형태 자체가 주는 즐거움 때문에 그림이 작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파노프스키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의 경향성을 찾으려고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화가가 의식하지 않고 경향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비판에 따르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 하다.
어떤 화가든 자신의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경향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불가능 하고 오히려 관습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인지하여 표현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그가 찾아낸 아이코놀로지는 내용이 아닌 형식이었다.
투시원근법이나 인체비례법이야 말로 르네상스인들은 인식하지 못했으나 대상을 보는 관점의 혁명적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중세까지는 평면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집트 벽화에서 드러나듯 이것은 신에 대한 절대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자신의 눈에 비친 대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내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척도로 삼는 것이다.
저자는 신플라톤주의의 절대성을 미켈란젤로의 근육질 넘치는 인물상에 대입한다.
완벽한 육체를 추구한 것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신플라톤주의를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형식에 있어서의 혁명적 변화는 단지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변화다.

뒷장에서 저자는 르네상스가 중세에 비해 완벽한 진보라고 본 유럽중심주의 시각을 비판한다.
르네상스 그림처럼 원근법과 비례법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면 열등하다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르네상스 하면 워낙 인문주의, 고전의 부활 등으로 완벽한 진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므로 저자의 이런 지적은 르네상스 찬양에 대한 안티테제로써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 역시 르네상스는 진보가 아니라는 하나의 담론을 제기한 후 거기에 맞는 증거들을 찾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역사가는 누구도 절대적 객관성을 가질 수 없고, 자신만의 시각과 해석의 도구를 가지고 사실을 재단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저자의 이런 비판도 일종의 말장난이라는 회의가 든다.
자꾸 기준을 무너뜨리고 평가란 상대적이므로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나가면 과연 우리가 판단내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기존 상식과 개념을 뒤흔드는 독특한 발상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너무 나가는 것은 언제나 반론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인 것 같다.

평소 좋아하던 뒤러의 그림을 컬러로 세부 사항까지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의 글로써 뒤러론을 접할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화가였지만 자세히 알고 보니 더욱 마음에 쏙 드는 매혹적인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은 뒤러의 고향 뉘른베르크가 16세기 북유럽 인문학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다.
역사책에 자주 나오는 도시가 아니라 그저 그런 시골 쯤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놀라운 화가가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선보이기에 충분한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사항은, 저자는 루터가 성육화설을 부인했다고 했는데 얼마 전에 읽은 루터 평전에 따르면 오히려 루터는 성육화설을 지지했고 그것 때문에 더 과격한 종교개혁가들, 이를테면 츠빙글리 등에게 비난을 받은 걸로 나온다.
저자 역시 종교개혁 시대를 대상으로 논문을 쓴 사람이니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착각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루터의 미사에 대한 태도가 당시부터 명확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다른 책을 참조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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