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법 체계로 본 근대 과학사 강의
토비 E. 하프 지음, 김병순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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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페이지에 달하는 꽤나 읽기 힘든 책이다.
일단 분량에서 질리고, 내용 또한 만만치 않다.
과학에 대해 썼다기 보다는,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그 중에서도 특히 법 체계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다.
그래서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 뿐.
좀 더 자극적인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왜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났는가이다.
이슬람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그렇게 과거에는 찬란했다는 문명을 가진 이 두 세계가 아닌, 서양에서 산업화가 가능했단 말인가?
사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점이다.
왜 하필 서양에서?
중세 천 년의 암흑기는 다 어쩌고 느닷없이 르네상스와 함께 신세계로 뻗어나가 식민지를 획득하더니 산업화를 일으켜 전 지구를 점령하게 됐는지, 그 힘의 원동력이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비교사학적 관점이 필요한 모양이다.
사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결과론적 분석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 정해진 결과를 놓고,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건 좀 논리적이지가 못하다.
그러나 워낙 상세하고 방대한 증거들을 들이대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단순히 "우연"에 의해 이 거대한 차이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반드시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하여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면 민족주의적, 혹은 평등론적인 시각에서 이 책을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저자는 꽤나 분명하고 단정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설명한다.
문득 이슬람이나 중국 쪽에서 나온 근대 과학의 발전사나, 근대 사회의 형성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현재의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서구 학자들에 비해 할 말이 적다는 건 분명한 일이다.

간단히 주제를 정리하자면, 서구 사회가 과학 혁명을 일으킨 가장 큰 원동력은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정비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법학의 발전은 과학 발전에 선행되야 한다.
이 법은 로마법에 나오는 보편적인 법, 전 세계 어디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보편법을 말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 통용되던 법이란 실정법 수준으로, 황제의 명령이나 칙령 정도를 의미하고 모든 이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서양의, 보편법 개념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중국법의 문제점으로, 황제의 명령에 의해 간단히 바뀔 수 있고, 판례가 다음 재판의 근거로 이용되지 않으며, 귀족과 평민에게, 혹은 중국인과 외국인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로마법에서는 형벌의 적용에 있어서 귀족과 평민에게 똑같이 적용됐단 말인가?
신분차를 무시한다는 게 아무리 법전이라 할지라도 중세 시대에 가능했을까?
저자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고 싶다.
하여튼 중국은 보편법을 발전하지 못해 여러 판례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상위법 개념을 만들지 못했다.
이슬람 역시 아랍인들에게 적용되는 샤리아와,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일반법을 분리해서 생각했고, 이슬람법의 절대성으로 인해 오히려 모든 학문과 토론의 생성 자체를 금지시키고 만다.
서구 사회과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완전히 정교분리된 것에 비해, 이슬람은 여전히 종교와 세속의 구분이 없다.
아직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살만 루시디에 대한 사형판결도 이슬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봐도 아무리 인권운동가나 평등주의자들이 미회시키려 해도 이슬람 국가의 신정주의는 극복해야 할 한계라고 생각된다.
종교와 세속의 분리는 따로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 기본적인 명제가 아닌가?

이 점에서 저자는 좀 색다른 논리를 편다.
중세 교회가 황제의 권한으로부터 분리되면서 교회법을 발전시키고 자치권을 가진 단체로써 인정받았기 때문에 교회야 말로 자치권 확대에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중세는 교회가 사회를 억압하고 과학 발달을 저해했다고 본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가 황제권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소유권과 재산권, 사법권 등을 갖는 근대적 의미의 자치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것은 더 나아가 법인의 설립, 대표를 갖는 의회주의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이슬람이나 중국과는 달리, 서양에는 동업조합이나 자치 도시의 전통이 있다.
이들의 성장은 과학을 자유롭게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중간지대의 역할을 한다.
반면 종교의 힘이 너무 강한 이슬람이나, 황제권이 절대적인 중국에서는 자치집단이 생기지 않아 대가족에게 의존하는 혈연주의나 족벌주의 전통이 강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100% 수긍하는 건 아닌데 확실히 동양에서는 서양보다 가족의 개념이 강하고 공과 사의 구별이 좀 모호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과학의 일반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성
인종과 국가 등을 초월해 과학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다.
둘째, 철저한 회의론
과학은 기존 권위와 관습에 대한 의심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토론을 법적으로 보호해 줘야만 발전이 가능하다.
저자는 오늘날 중국의 사상통제는 아무리 경제력이 발전해도 우월한 위치에 오르지 못하는 한계점으로 설명한다.
셋째, 공평성
과학은 누구나 똑같은 수단인 논리와 연역적 추론, 경험적 관찰 등을 통해 가설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 수단의 일반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넷째, 공동체주의
가설은 과학자 집단에 의해 인정받아야 한다.
혼자 주장하거나 아무리 권위있는 사람이 인정한다 해도 집단의 인정이 없으면 옳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이 점은 서구 과학이 전통 과학에 비해 논문이나 학회 같은 것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슬람은 그리스 철학을 발전시켜 12~13 세기에 서양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지식을 쌓지만, 꾸란의 절대성을 강조한 나머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토론할 수 없었고 마드라사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도 오직 종교학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과학을 공식적으로 교육할 수 없어 사적인 자리에서만 개인적으로 전승됐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이는 쇠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문화권에는 공식적인 인증절차나 인증서 등이 없었다.
학자가 제자를 개인적으로 인정하면 끝이기 때문에 표준적인 교육체계를 세울 수 없었다.
중국은 관료주의가 과학의 발목을 잡았다.
저자는 기술과 과학의 구분을 분명히 하는데, 엄밀히 말해 기술은 경험에서 비롯된 한 차원 낮은 개념이고 중국의 과학은 바로 이 기술발전에 근거했다고 본다.
이를테면 화약이나 나침반처럼 말이다.
반면 과학은 매우 고차원적인 문제인데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냐는 일종의 철학적인 개념이다.
서양을 앞질렀다는 중세의 중국 과학은 사회의 변혁이나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못했다.
사상의 통제는 과학의 기본 원리인 회의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말할 것도 없이 오직 국가 관료만을 뽑는 과거제도 모든 학문을 통제했고 저자는 한술 더 떠 중국의 대학은 자치권을 갖는 유럽의 대학과는 개념이 달라, 과거 준비학원이라고 폄하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상당히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른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이나 이슬람 학자들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한다.
또 저자는 이성을 중국의 정신으로 번역할 수 없다는 얘기도 한다.
이성은 신이 주신 내면의 빛과도 같은 것으로, 합리적인 피조물이 자연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인데 중국의 정신수양은 음양오행설에 기댄 매우 느슨한 유기적 세계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성이나 양심을 매우 엄밀한 용어로 정의한다.
신이 주신 이성, 내면의 도덕적 저울인 양심이 바로 기독신학이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개념으로 정의한다.
중세 교회가 과학을 억압했다기 보다는 상당 부분 공존했으며 심지어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점은 다른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나는 베버가 주장하는 기독교나 청교도 윤리의 우월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데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기독교가 서양 사회에 이바지한 바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꽤나 논리적으로 또 상당히 날카롭게 동양이나 이슬람 사회에 매스를 가하기 때문에 어설픈 평등주의자들이 읽으면 상당히 충격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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