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는 살아있다 - 그 어둠과 빛의 역사 역사도서관 교양 8
장 베르동 지음, 최애리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책 내용도 재밌지만 번역자의 수고가 너무 많이 묻어난 책이다.
진정한 번역자의 표상을 보여주는 기분이 든다.
이래서 번역은 가능하면 전문가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중세사를 전공하고 프랑스어 동시 통역을 하는 역자의 이력과 딱 맞는 작업이었을 것 같다.
이토록 성실하게 각주를 달아주다니!
역자의 각주 덕분에 프랑스 역사를 어느 정도 개괄할 수 있었다.
각주가 아니었다면 대체 이게 누군가 이런 사건이 있었나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갔을 것이다.
날림 번역으로 일관하는 세태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까지 보인다.

보통 중세의 기원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서부터 콘스탄티노플의 멸망까지, 5~15세기를 일컫는다.
중세 천년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중세의 구분은 논란이 많지만 하여튼 흔히 알고 있기로는 그렇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봉건영주들의 시대, 뭐 이렇게 대충 느낌이 온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와 르네상스 덕분에 중세는 상대적으로 억압되고 암울한 시절로 기억된다.
심지어 찬란했던 그리스 로마 시대보다 오히려 퇴보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나 역사에 후퇴가 어딨겠는가?
또 근대의 발전은 과거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시대를 온전히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고 편협한 시각에 불과하다.

저자는 공감을 가지고 비판하라고 충고한다.
지금의 눈으로, 혹은 가치로 과거를 비판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 뿐더러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없다.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 혹은 보다 사실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태도가 돋보인다.
이를테면 종교재판소의 재판관들은 죄다 가학주의자였고 남의 재산을 뺏기 위해 약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미치광이였다, 이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세심한 사료 분석을 통해 그런 미치광이들은 일반적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재판관들은 약간의 이기심, 사리사욕, 가학성이 분명히 있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영혼의 정화를 위해 화형을 택했고 가능하면 이단들을 개종시키려고 애썼다.
그들의 잔인함 때문에 마녀사냥이 시작됐다기 보다는,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시스템, 자연재앙에 대처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약자집단에 대한 대중의 광기, 먹고 살기 힘든 사회적 상황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끔찍한 재앙을 낳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세인만 미치광이 살인자들이 아니라 우리 시대인도 히틀러처럼 수백만의 무고한 시민들을 종종 학살하곤 하지 않는가?

프랑스 역사에 대한 대략적인 개괄을 얻을 수 있었던 점도 큰 소득이다.
이제 어느 정도 중세의 이미지가 잡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