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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광주에 있는 도서관에 없던 책이라 사서 볼까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평촌 도서관에서 발견한 뒤 반갑게 읽었다.
이와 비슷한 책인 <화형> 이나 <차도르를 벗어라> 등이 생각난다.
이슬람 사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인상 등은 이런저런 책에서 얻는 단편적인 사실들에 불과하고 편견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도 책의 소재로 쓰이다 보니 자극적이고 드문 일이 자주 언급되고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런 끔찍한 사건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도 있어서는 안 될 일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이슬람 사회가 우리에게 좀 더 많이 알려지길 원하고 정말 이런 끔찍한 사건은 사라지길 바란다.
명예살인이라니, 가족에 의한 살인은 아무리 미화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근본주의가 너무너무 싫다.
비단 이슬람 세계 뿐 아니라 기독교도 교조주의나 근본주의가 정말 끔찍하다.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는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종교는 개인을 제한하는데 그친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는 여전히 종교가 법으로 작용하고 사회 전체를 억누르고 있다.
아무리 너그럽게 비교를 한다고 해도 미국의 근본주의 분위기와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의 이슬람 법을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종교는 개인의 자유와 생각을, 심지어 인권마저 억압한다.
탈레반 같은 정신병자 집단이 한 나라의 정권을 잡아 국민들을 통제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머리를 가리는 히잡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온 몸을 칭칭 동여매고 눈만 내 놓고 다녀야 하는 부르카로 통제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
부모에 의해 배우자가 결정되고 합법적으로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나라!
아내를 얻는 것은 네 명에 국한되고 대부분의 남자는 한 여자만 데리고 산다지만, 또 원뜻은 전쟁 중의 미망인을 돌보기 위해서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이고 자신을 드러낼 수 없으며 독자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탈레반이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하면 도대체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인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누가 이것을 연약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이슬람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옹호할 수 있겠는가?
가끔 이슬람 관련 서적들을 읽을 때 애써 좋은 뜻으로 해석하고 문화 상대주의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오히려 억압받는 여성들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지 않는 이른바 문화 상대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 서구 우월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파란색 부르카가 보기에는 참 예쁘다는 사실이다.
이란의 차도르는 검은 색으로 알고 있는데, 컬러 사진에 실린 부르카를 보니 죄다 파란색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파란색 부르카라 억압의 상징 대신, 그저 아름다운 여성의 옷으로 느껴진다.
그 안에서 더위를 참아가며 옷자락이 발에 밟힐까 봐 두려워 하며 한 발 한 발을 떼는 여성들의 고통은 도대체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 책에도 명예살인은 등장한다.
바람핀 유부녀를 친정 오빠들이 살해한 것이다.
정절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해서 가족에 의해 살해를 당해도 되는 걸까?
인간의 목숨이 이렇게도 하찮을 수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유부남과 처녀가 간통을 저지르면 유부남은 처녀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 들이면 된다.
그러나 유부녀와 총각이 간통을 저지르면 유부녀는 사형에 처하고 총각은 감옥에 간다.
투석형에 처하기도 한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그들이 믿는 알라의 뜻일까?
정말로 알라는 여성의 정절을 생명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남성의 정절은 여자와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근본주의자들의 특징은 경전의 맥락적 해석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성경에 나온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세상은 7일만에 창조됐고 모든 생물은 한 조상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각자 처음부터 그 모습 그대로 따로따로 만들어졌으며 이 우주에 오직 지구만이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교조를 어린아이들에게 믿으라고 강제하며 심지어 공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까지 가르치라고 강요한다.
종교주의자들의 이런 어처구니 없고도 슬픈 행동이 오히려 그들의 신을 깍아 내린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독실한 무슬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선지자 무하메드가 가르치는대로 경건하게 신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를 쓴다.
심지어 이 21세기에서 조차 말이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신에게 구원받지 못하고 선교를 해야 하는 불쌍한 민족으로 여긴다.
이슬람은 반대로 서구 기독교인들을 이교도로 생각하고 배척한다.
과연 누가 정말로 구원을 얻은 이고 영혼이 천국에 갈까?
나는 이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무슬림들이 믿는 바로 그 절대자가 아닐까?
제목은 카불의 책장수이지만 주인공을 단지 책장수라고 하기엔 좀 약하단느 생각이 든다.
그는 헌책이나 파는 사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꽤 부유한 층에 속하는 일종의 사업가다.
서점도 여러 개를 가지고 있고 이란이나 파키스탄을 오가며 판권도 따 온다.
그런데도 책장수라고 번역을 하니까 왠지 소박한 시민 같다.
파리의 신문팔이인 알리 아크바르처럼 말이다.
책을 사랑하면서도 정작 아들들은 그 책방을 키우기 위해 학교에 보내지 않는 사람!
어쩌면 그에게 책과 책방 사업은 별개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