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산책 탐사와 산책 4
윤광준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을 하루키가 썼으면 어땠을까, 하면서 읽었다.
소재는 참 좋은데 작가의 글솜씨가 너무 평범하다.
비문이 있다거나 어줍잖은 감상을 늘어놓는 아마추어는 아니지만, 글을 잘 쓴다는 건 엄청난 재능이고 축복임을, 이런 평범한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다.
하루키의 그 기막힌 글솜씨, 주제를 풀어나가는 맛깔나는 글맛이 정말 그리워진다.

저자는 아마도 꽤나 섬세한 미적 감수성을 가진 인물인 것 같다.
그의 또다른 주업인 오디오 감상기를 읽을 때도 느낀 바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작은 사물 하나하나에도 꼼꼼하게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소중하게 아껴 쓰는 사람 같다.
나는 스스로 매우 둔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것들은 처음부터 별로 관심이 없는 것들이라 아예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될 뿐이고, 매우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따지는 경우가 좀 적어서 그렇지, 나 역시 마니아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예민하고 깐깐할 것 같다.
명품이 이렇게 전 사회를 휩쓰는 이유도 비단 부와 명예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그 민감하고 세밀한 취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앞쪽의 지포 라이터나 몽블랑 만년필, 벨트 같은 건 워낙 관심이 없는 분야라 별 흥미가 없었다.
뒷쪽으로 가면서 내가 관심가는 물건들이 등장하는데, 나는 문득 와코루 팬티를 떠올렸다.
내가 책을 쓴다면 이 팬티 정도는 언급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세상에, 맨 마지막 장에 와코루 팬티가 나왔다.
아마도 아내가 애착을 가지는 물건인 모양이다.
나는 이른바 보따리 장사에게 이 와코루 팬티를 샀는데 (실은 엄마가 산 거지만) 한 장에 만원인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백화점이 아닌 시장표 팬티는 한 장에 천 원짜리도 많았기 때문에 백화점도 아닌 보따리 장사가 한 장에 만 원씩 판 거라면 꽤 비싼 축에 낀다.
엄마는 학교에서 해직된 선생님이 물건을 팔러 왔다고 할 수 없이 샀다는 말을 하면서 내게도 몇 장 나눠 줬다.
그런데 그 평범한 팬티를 10 여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잘 입고 있다.
책에 나온 바대로 빨아도 변형이 안 되고 감촉이나 입었을 때의 편안함이 정말 좋다.
화려한 속옷도 가끔 입어 봤지만 이것만큼 편한 속옷은 없다.
정말 명품은 누구든 다 알아보는 모양이다.

패션이나 디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생활할 때 편리하게 쓸 수 있고 내 취향에 꼭 맞는 물건이 있으면 애착이 가고 꼭 그것만 쓰게 된다.
나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데 원두를 직접 갈아 마실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 어디가서 커피 좋아한다는 말도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귀차니즘 때문에 원두 갈아 마시는 건 포기했다면서 과감하게 인스턴트 커피 옹호자라고 밝힌다.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전 스타벅스 커피 좋아해요, 이러면 커피 애호가로 보이기는 커녕 진짜 커피맛도 모르면서 매니아인 척 한다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너무 좋다.
그 강하고 톡 쏘는 진한 맛을 완전 사랑한다.
난 이 커피 밖에 안 먹어 보고 이게 젤 맛있는데 어쩌란 말이냐, 반드시 모든 커피를 다 섭렵해 본 사람만이 커피에 대한 사랑을 밝힐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냔 말이지.
그러고 보면 취향이란 참 개인적이고 지극히 내밀한 문제라 누가 왈가왈부 할 것도 못 되고, 남의 취향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캔커피는 네스까페가 제일 좋고, 인스턴트 커피는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좋다.
이게 소박한 내 커피 취향이다.

그냥저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소재를 풀어가는 솜씨가 너무 평이해 좀 지루하기도 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옷이나 신발 같은 품목에 대해서 누가 좀 맛깔나는 솜씨로 썰을 풀어가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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