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조선 - 누가 진짜 살인자인가
유승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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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소재는 무척 자극적이고 신선한데 막상 책 내용은 그저 그렇다.
아마도 저자가 법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일성록의 기록을 그대로 옮기는데 치중해서 책의 재미가 반감된 것 같다.
차라리 FBI 수사관이 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가 훨씬 실감나고 흥미진진하다.
일선에서 범죄를 수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공판들을 분석했으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
책상 앞에서 한문 기록을 공부한 냄새가 너무 난다.
누군가 다시 시도해 줬으면 좋겠다.

조선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데 몇 가지 특이할 만한 사항을 언급해 보자면,

1. 사적인 복수가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관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무력을 행사해 보복하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는 복수심을 용인했다.
특히 아내가 남편의 원수를 갚는다더나,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은 의리의 일종으로 용납했던 것 같다.
한 사건을 보면, 어떤 양반이 아버지를 죽인 자를 낫으로 살해한 후 그 창자를 씹어 먹고 허리에 두른 채 거리를 활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여자는 절구공으로 남편 살인자의 머리를 짖이기도 했다.
요즘도 끔찍한 살해 사건이 많지만, 옛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인류의 성정이 온화했다거나 덜 폭력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흉흉한 범죄는 어느 시대나, 특히 시대가 혼란할수록 흔했다.
또 수령이나 백성 모두 법에 무지했기 때문에 올바른 법 집행이 어려웠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법관들이 아니고 고을의 수령, 일종의 행정관이 재판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과학적인 수사가 어려웠음은 물론, 법의 적용이나 판결도 주먹구구 식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특히 조선 형법은 자백을 중시 여겼기 때문에 (아마 증거 입증이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이 일상적으로 행해졌고, 재판 과정은 수년을 넘기기 일쑤여서 대부분 판결을 받기도 전에 혐의자들은 옥에서 사망했다.
적어도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고문이 사라진 것도 어쩌면, 수사의 발달로 자백을 받지 않고도 범죄를 입증할 수 있게 되서인지도 모른다.

2. 미신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히 높아서 그 때문에 살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희빈도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모호한 죄명으로 사형당했다.
왕실에서도 이럴 정도인데 일반 백성들의 의존도는 얼마나 높았을지 알만 하다.
이 책에도 첩이 적손 자식들을 저주해서 죽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다.
단순히 저주했다는 이유로 살인자로 고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 아이의 손가락이나 발을 베어 먹으면 창질이 낫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유언비어가 퍼져 버려진 아이들이 잔혹하게 신체가 절단되는 일도 흔했다.
문둥병이 나으려면 아이를 삶아 먹어야 한다는 전설처럼 말이다.
효자가 허벅지살을 베어 아버지가 나았다는 전설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국가에서는 효의 실천으로 표창까지 하는 실정이고 보면, 드러나지 않는 곳의 공공연한 신체 훼손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면 의학이나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 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3. 일상 생활에서도 폭력이 흔하게 사용됐다.
특히 술 취한 후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아마도 제대로 된 치료가 어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폭력 사용이 광범위하게 용납되는 분위기 때문에 더욱 사망 사고가 흔했던 것 같다.
고문이 수사의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상전이 노비 죽이는 것도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분위기였으며,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폭력이 흔히 사용됐으니, 요즘 인권의 개념으로 당시를 볼 수는 없는 문제 같다.
이런 미시사의 분석을 보면 당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정치사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열 네 가지 살인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법의학이나 수사적인 관점에서의 서술이 부족해 상당히 아쉽지만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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