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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평점 :
기대했던 것 만큼 유익한 책이다.
흥미롭게 잘 읽고 있다.
제목이 <밖에서 본 한국사>이길래, 재미교포나 외국인이 공저한 그런 책인 줄 알았다.
한국사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겠다는 취지로 이해되는데,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민족주의 사관에 지나치게 경도된 일부 재야 사학자가 아니고서야 (이를테면 이덕일 같은) 대부분 저자와 같은 견해일 거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꺼리를 정리해 보자면,
1. 청동기 시대는 최대한 멀리 잡을 경우 기원전 15세기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보통 10세기에서 15세기 사이로 본다고 한다.
고조선의 표지유물이라고 알려진 비파형 청동기는 비단 고조선인들만 사용한 게 아니라 동이족이 썼다고 보는데, 이 때 동이족은 한민족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예맥, 숙신, 한민족, 왜, 동호 등을 한꺼번에 부르는 명칭이다.
단순히 특정 유물이 출토됐다고 해서 그 유물이 나오는 지역은 전부 고조선의 땅이다, 이건 너무 빈약한 추론이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는 책에서, 이덕일은 고조선의 역사가 2000년을 넘을 뿐더러, 왜 청동기 시대에만 국가가 성립할 수 있냐고 주장했다.
또 한4군은 중국 대륙에 있었던 것으로 한 무제가 한반도에 설치한 게 아니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한4군의 실제적인 존재를 인정하며, 다만 한의 지배가 시간이 흐를수록 유야무야 되면서 자치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추론한다.
나는 이덕일 씨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가 본격적으로 반론을 전개해 줬으면 좋겠다.
저자는 한4군이 설립된 덕분에 중국의 우수한 철기 문화가 한반도에 이식됐다고 본다.
이덕일씨는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철기 문화가 자생했다고 주장한다.
2. 저자는 기자 조선에 대하여, 우리 조상이 이렇게 오래 됐다는 걸 보여 주려고 은나라 사람 기자를 억지로 갖다 붙인 걸로 추론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자조선은 기원전 11세기에 세워졌는데, 저자의 추론으로는 위만조선이 세워질 무렵인 기원전 4세기에 갖다 붙인 전설로 여긴다.
<중동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굳이 문명의 발상지인 우르 땅에서 가나안으로 건너 왔다고 기록한 것처럼 말이다.
민족의 기원 부풀리기 일종이다.
어떤 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일단은 최소한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실체가 인정되는 국가는 한 무제에게 멸망한 위만조선이다.
이들은 중국 시황제 무렵에 동란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한 집단이 지배권을 갖고 나라를 건국했다.
여러 민족이 섞이면서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 이런 문제에 민감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신라의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신라의 역할을 상당히 축소시켜 표현하는데, 물론 신라가 삼국 통일의 의지가 전혀 없었고 당을 끌어 들임으로써 만주 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감상적인 자세가 아니라, 신라의 통일을 계기로 한민족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어떤 책에서는 고구려라는 나라 자체가 한민족만의 나라는 아니므로 고구려사는 중국과 한국, 또 그 외 소수민족이 다수 관여하는 변경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3. 아마 제일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은데 저자는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를 인정하는 쪽이다.
이희진의 역사책에서는, 사서에 왜라고 표시된 것은 곧 가야를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저자도 가야와 왜를 연합체 정도로 이해하면서 처음에는 가야가 주도권을 쥐다가 나중에는 왜로 주도권이 넘어갔으리라 추정한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5만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구원하러 올 정도로 왜는 한반도 내에서 확실한 군사 활동을 벌였다고 생각한다.
이희진은, 왜의 수가 엄청나서가 아니라, 한 번에 겁을 줘서 누르기 위해, 즉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 불필요한 대군을 과시용으로 동원헸다고 해석했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의 저자 의견이 합리적인 것 같다.
일제 시대처럼 한반도를 집어 삼키기 위해 부풀려진 주장이 아닌 이상,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중국이 동이족이라고 일컫을 때는 왜까지 포함했다고 하니, 신라의 통일을 계기로 왜는 가야나 백제로부터 떨어져 나가 독립적인 길을 갔다고 본다.
4. 몽골 침략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한다.
중국 문명에 통합되어 과학 기술이나 문화 발전을 이루었고 그 성과가 조선 초 세종대왕 때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고 본다.
한글 창제도 몽골의 파스칼 문자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측우기나 인쇄술 등의 과학 기술 발전도 원나라 지배기 때 바탕을 마련했다.
아마 민족주의자들은 이렇게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일제 식민지도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말이냐? 이 매국노야!
민감한 일제 시대 얘기는 빼고, 대신 미군정 때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주체사상 외치다가 고립된 북한과 비교해 봐도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다.
시원하게 비판하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편이다.
읽어 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