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황홀 - 윤광준의 오디오 이야기, 2판
윤광준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오디오마니아의 올바른 표현은, audiophile 이라고 한다는 걸, 책에서 배웠다.
오디오파일이라고 하면, 한국식 발음으로 하면 audiofile 과 똑같이 들려 묘한 느낌을 준다.
이런 마니아적인, 아니 마니아보다 한 단계 더 나간 오타쿠적인 책들은 내 성향 때문인지 남다른 위안을 선물한다.
나는, 이른바 책매니아다.
이걸 영어로 뭐라고 표현하는 모르겠다.
책 애호가 정도로는 안 되고, 책 매니아라고 해야 그런대로 내 열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도 구별이 됐지만, 책 자체를 모으는 책 수집벽이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책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갖는 것 보다 읽는 게 훨씬 더 급하고 중요하다.
돈이 많으면 이 책 저 책 몽땅 사 들이고 싶으면서도, 꼭 돈 때문이라기 보다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만큼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으니까)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다.
1년에 백 여 권 이상 읽는 사람이라면, 읽기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도서관이나 헌 책방을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책에도 오디오 매니아와, 레코드판 매니아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오디오에 집착하는 사람은 보다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기를 바꾼다.
레코드판을 모으는 사람은, 실황 연주회가 진짜라면서 더 좋은 음반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집착한다고 할까?
나는 소프트웨어 쪽이다.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막힌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이 판국에, 책을 모으고 있을 시간이 없다...

리스닝룸에 대한 저자의 바램이 자세히 묘사됐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내 서재를 그려봤다.
서재야 말로 내가 꿈꾸는 평생의 소망이다.
작가의 서재를 소개하는 책에서, 신경숙의 서재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지 모른다.
한 면을 완전히 책장으로 짜 맞추고, 반대 쪽에는 컴퓨터 책상처럼 서랍이 없고 널찍한 책상을 배치한다.
한 쪽에는 편안한 쇼파와 오디오가 준비되어 있고 안쪽에는 샤워실까지 있어 방 밖을 나갈 필요조차 없다!
커튼이 드리워져 주변 풍경이 독서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아, 정말 어찌나 부러웠던지...
방 하나를 온전한 서재로 꾸미려면 널찍한 주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애들 키우는 아파트에서 과연 주부가 방 하나를 자기만의 서재로 꾸민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문화적, 정신적 사치를 누리려면 돈을 아주 많이 벌던지, 아니면 책의 저자처럼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오직 취미 그 하나에만 올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갑수 씨의 그 무모한 열정을 사랑한다.

끊임없이 기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이른바 업글병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일인지 모른다.
나를 증명해 주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내게 완전한 기쁨을 주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극단에 이르고 싶은 마음, 아마 그래서 취미를 직업으로 갖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직장일이 지겨운 까닭은 그 일이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즐거운 일에 들어갈 돈을 벌려고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워커홀릭은 아마 취미처럼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에세이에도 책상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흔들리지 않는 책상, 미세한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 육중한 책상을 찾기 위해 해메는 그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충 아무 거나 쓰면 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은,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크게 느낀다면, 그리고 그 차이를 위해 큰 돈을 쏟아붓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매니아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최고의 품질, 최고의 제품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뒷쪽에 오디오 기기들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은 대충 넘어갔다.
워낙 기계치이고 클래식에 관심이 있지만 오디오 소리까지 귀기울일 깜냥은 안 되기 때문에 별 흥미가 없었다.
이른바 막귀라서 좀 더 많은 클래식을 듣고는 싶지만, 아무 기기나 들어도 아직은 좋다.
저자의 글솜씨도 그럭저럭 무난하고 북디자인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특히 오디오 기기들을 담은 사진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사진작가라는 저자의 원래 직업이 빛을 발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