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해럴드 블룸 지음, 손태수 옮김 / 들녘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내 지적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어려운 책은, 배경지식이 부족할 경우, 재미가 없다.
수준있는 작가가 쓴 글이 재미 없다면, 일단 자신의 독서 능력을 의심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교양인의 책읽기" 도 결국 못 읽고 덮고 말았는데, 이번 책 역시 1/3 정도 읽다가 포기했다.
서머셋 몸이 쓴 천재론은,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반면, 해럴드 블룸의 천재론은, 흥미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분량이 850페이지에 달하는지라 먼저 기가 질리고 몸이 겨우 열 명의 천재를 언급한 반면, 블룸은 그 열 배인 100명의 천재를 거론하는지라, 양에서 우선 힘이 빠진다.
더군다나, 몸이 작품보다는 작가 개인의 일화에 치중했던 것에 비해, 블룸은 작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니 그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 않은 나 같은 어설픈 독자로서는, 블룸이 감탄하는 문장들이 대체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지적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몸의 위트있는 해학적 문체에 비해, 블룸은 너무나 고답적이고 현학적이다!
역시 소설가와 비평가의 차이가 존재하나 보다.
비평가들이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글을 보면, 과연 작가가 저렇게까지 도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인물을 창조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블룸 역시 이 의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하여튼 비평은 소설 읽기보다 훨씬 힘들다.

얼마 전에 읽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평집도 500 페이지가 넘는데 거기 소개된 책은 하나도 읽은 게 없어 결국은 덮고 말았는데, 역시 이 책도 중간에 포기했다.
그렇지만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일단 내가 모르는 천재적인 작가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위대한 작가들의 그 "위대함" 과 "불멸성" 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특히 무함마드나 바울을 문학적 천재의 입장에서 분석한 글은 무척 흥미로웠다.
구약의 저자들을, 야훼를 창조해낸 작가로 본 점도 독특했다.
코란은 접한 적이 없어 모르겠으나, 확실히 성경은, 특히 구약은, 문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신약보다 구약이 훨씬 재밌다.

지루하게 읽은 제인 오스틴은, 워낙 많은 이들이 천재로 거론하는 바람에, 내가 <오만과 편견>을 오독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래서 이 책이야 말로 꼭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그녀가 언니 카산드라에게 보냈던 재치있고 재기발랄한,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이는 편지들은, 이 책에서도 소개됐다.
꽤나 매력있는 작가임이 틀림없다.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도 역시 100인의 천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입센이나 몰리에르, 베게트 같은 희곡작가들은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흔히 알고 있는 "인형의 집" 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는 다뤄지지도 않는다.
저자는 세익스피어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류 역사 최고의 천재로 꼽는다.
서구 사회에서 세익스피어의 위치가 얼마나 확고부동하고 위대한지 새삼 확인했다.
그의 명성에 비교할 작가라면 세르반테스나 단테 정도일 것이다.
좀 더 고대로 가자면 베르길리우스와 호메로스 정도?
하여튼 세익스피어에 대한 숭배심은, 저자가 거의 모든 장에서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세익스피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그의 유명 작품들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겐지 이야기>의 저자인 무라사키가 꼽혔다.
다시 한 번 일본의 국력과 위상을 확인하는 기분이다.
괴테가 독일어 문화권 외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이다.
프로이드가 단지 "수필을 잘 쓰는" 의사로만 평가된다는 건 이제는 상식이 됐지만, 설마 괴테의 문학성이 의심되다니, 미국인들이 미친 게 아닐까?
영어권에서는 이제 그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는데, 미국 최고의 비평가가 하는 소리니 과장일 리는 없고 하여튼 놀라운 일이다.
얼마 전에 영화로 본 <베니스에서의 죽음> 을 쓴 토마스 만이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얘기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근래에 자주 언급되는 저자 같아, 꼭 한 번 읽어 볼 생각이다.

블룸이 좀 더 맛깔나는 글솜씨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수준이 거기까지 안 되는 게 더 큰 원인이겠지만, 하여튼 현학적인 문체가 너무 많아 쉽게 몰입이 안 된다.
여기 소개된 책을 좀 더 많이 읽어 본 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어떤 강연에서 문학의 본질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하자, 어떤 청중이 그렇다면 스티븐 킹이나 조앤 롤링도 위대한 작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겠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블룸이 개탄한 것처럼 나 역시 한숨이 푹푹 나왔다.
만약 상대적인 기준을 적용해 자기에게 의미가 있으면 훌륭한 작가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세상 어떤 것도 평가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고전이란 혹은 천재란 시대성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과연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류가 어느 시대까지 그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인지, 내 수명이 100년이 채 못 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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