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 이상의 도서관 4
아베 긴야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 책이든 처음 접하는 소재는 낯설고 그닥 재미가 없다.
몰입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졸아 버린다.
이 책 역시 중세의 생활상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를 다루다 보니, 재밌게 읽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읽다가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대충 한 번 읽은 다음 다시 반복해서 읽으니 어느 정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독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경시식이 아닐까 싶다.

유럽 영화를 보면 아침에 빵 사러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저 사람들은 왜 주식인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지 않고 빵집으로 사러 가는 걸까, 가끔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 해답을 발견했다.
빵 굽는 화덕를 설치하려면 상당한 돈이 들 뿐더러, 중세 이후 영주가 지정한 빵가게만 이용해야 하는 이른바 사용강제권이라는 게 있었다고 한다.
곡식을 찧는 것도 영주가 지정한 물레방앗간만 이용해야 했다.
집에서 수동 맷돌을 돌리거나 직접 빵을 구울 수도 있었지만 강제로 영주의 지정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이중의 세금을 내는 격이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집에서 절구로 곡식을 빻았고, 밥은 지금도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다.
아마 밥과 빵의 조리 과정의 차이일 수도 있겠는데 하여튼 문화의 차이가 새롭다.

중세의 특이한 점으로는 공중목욕탕이 있다.
로마 시대 욕탕은 귀족들의 향락 장소로 유명한데 중세의 욕탕은, 농민은 물론 빈민들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복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특히 귀족들은 연옥에 있을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이른바 목욕세를 유산으로 남겨 놓는다.
빈민들이 공중목욕탕에서 몸을 씻을 수 있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선행을 베풀어 자기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목욕이 얼마나 중요한 행위였는지 알 수 있다.
도제들도 목욕비를 따로 받아 일주일이 끝나는 날에 한 시간 정도 목욕탕 가는 휴가를 얻었다고 한다.
한국 같은 경우는 공중 목욕탕이라는 시설 자체가 없었던 것 같은데, 현대에는 찜질방이나 사우나가 극성인데 비해, 유럽은 오히려 중세에 공중 목욕탕이 성행했을 뿐, 지금은 다같이 모여서 씻는 문화는 없는 걸로 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궁금하다.
중세에는 대형 빵화덕의 열기로 욕탕을 운영했다고 하는데, 기술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한국인들 역시 욕탕 문화를 좋아하지만, 생활의 특성상 공중 목욕탕을 운영할 형편이 안 됐기 때문에 과거에는 못했고 현대에 와서 성행하는 건 아닐까 싶다.
중세 목욕탕이 쇠락한 것은, 곡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영주들이 공유지인 숲을 목초지로 바꾸면서 벌채에 돈을 지불해야 하면서부터다.
그동안은 숲에서 목재를 대는 것이 목욕탕 주인은 공짜였는데, 곡물 가격이 떨어지자 영주들이 숲을 점령하면서 벌채의 자유가 사라진 것이다.
목욕탕에서는 사혈 같은 민간 요법도 행해졌고, 여기서 갈라져 나온 것이 이발사였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머리와 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이발사라는 직업 자체가 없었던 것에 비해, 유럽은 이발사의 전통도 길다.
목욕탕 주인은 이발이나 면도도 하고, 간단한 의술도 행했는데 이발사가 중세에 의사 노릇을 했다는 것도 여기서 같은 맥락이다.
재밌는 것은, 형리에게 고문을 받은 사람을 치료하다 보니, 형리와 마찬가지로 천민시 되었다는 점이다.
농민들 역시 귀족들에게 차별을 받으면서도 또 자기 아래에 천민 그룹을 형성해 무시하는 걸 보면 확실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모양이다.

중세 유럽의 생활상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해 놨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그러고 보면 서양의 중세에 해당되는 신라나 고려 시대는 이 정도까지 세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에는 학계에서도 일상사를 따로 연구하는 것 같은데 우리의 중세 시대 생활사도 많이 연구되었으면 좋겠다.
일본인이 쓴 서양 중세 생활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같은 시대를 한국과 유럽 식으로 비교해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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