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 닐 애셔 실버먼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에 읽다가 만 책을 다시 읽게 됐다.
중간 부분 넘어가면서 30분 정도 졸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속도감이 나고 재밌게 읽었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주장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인지하기 위해 꽤 정성스럽게 읽은 책이다.
이름으로 봐서는 이스라엘인, 즉 유다인인 것 같은데, 과연 이 사람이 신앙인일지 궁금하다.
성경이 일획일점도 틀림이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해야만 진실한 신앙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성경의 거의 모든 사실을 죄다 부인하면서도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인, 혹은 유대인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사색기행> 을 보면, 이스라엘인들이 생각보다 종교적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고리타분한 윗세대와 완전히 달라서 자유분방한 서구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정말로 메시아 사상을 믿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인이라는 이미지는 하나의 정형화된 편견에 불과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제일 충격적인 사건은 역시 족장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볼 때 가나안을 떠돌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경이 사실을 기록했다는 전제하에 이 시대가 대체 언제인지를 밝히려는 수많은 노력이 지속됐으나, 저자는 이런저런 연대설을 모두 부정하고 아예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가상의 사건, 이를테면 민족신화로 치부한다.
간단히 말해서 환웅과 웅녀의 시대를 규명하려는 것과 똑같은 걸로 여긴다.
환단수가 실제로 어디냐는 것과 비슷하다.
예수가 동정녀에게 잉태된 것을 믿으려면, 석가모니가 마야 부인의 허리에서 출생한 것도 믿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아브라함부터 야곱의 열 두 지파에 이르는 시기가,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지식을 배경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요셉이 낙타 대상에게 팔려갔다는 일화는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상황이다.
왜냐면 낙타가 등장한 시기가 적어도 기원전 10세기 무렵이기 때문이다.
족장시대의 배경인 청동기 시대에 낙타가 짐꾼으로 쓰였을 리 만무하며 사육조차 안 됐다는 게 증거다.
가나안 정복 당시 정착민이었다는 블레셋족도 청동기 시대에는 등장하지 않고, 기원전 12세기는 돼야지 비로소 해안 지대에 도시를 이룬다.
암몬족이나 모압족, 에돔족 등도 모두 성서가 집필될 무렵인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과 자웅을 겨루던 이웃들이다.
족장시대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에는, 가나안에 이런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흔적이 전혀 없고 유물도 발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가나안 정복은 뭐란 말인가?
물론 여호수아를 앞세워 징치고 꽹과리 울려서 여리고 성벽을 허물어뜨린 사건도 그저 상상의 창작물일 따름이다.
여리고에는 무너진 성벽의 흔적도 없고, 성벽이 세워지지조차 않았다고 한다.
성벽이 애초부터 없었으니, 허물고 말 게 없다는 얘기다.
지층의 구분에 따라 매우 복잡한 예시가 제시되어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초기와 후기 사이, 즉 가운데 시기에는 가나안 지대가 버려진 땅이었다고 한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말이다.

더 복잡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문제다.
성경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온 아브라함 일파의 자손이 바로 유대인인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부터 가나안에 있었던 민족으로 이주민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예전에 읽었던 부분이라 정확한 근거는 아직 이해가 안 간다.
유목민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베두인족을 근거로 볼 때 유목민 집단이 점차 가나안에 평화적으로 정착했다는 설도 있고, 유목민이 힘을 합쳐 정착민을 몰아냈다는 설도 있으며 (가나안 정복처럼) 농민반란 세력이 고원지대로 올라가 하나의 집단이 됐다는 혁명설도 있지만 정황 증거만 있을 뿐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모두 부인됐다.
이 부분은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후대의 집필자들이 굳이 우르 땅에서 건너온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내세운 것은, 자신들의 기원이 매우 오래됐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유목민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역사가 긴 민족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이다.
마치 단군신화에서 기원을, 고대 주나라의 시작과 일치한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아브라함이 큰 상인으로 대상 무역을 하기 위해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이동했다는 설도 있으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실존 인물이 아니니 이것도 상상일 뿐이다.

재밌는 것은,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묻힌 걸 두고, 유다 왕국의 조상으로 본 것이다.
또 세겜과 벧엘이 등장하는 야곱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조상으로 본다.
성경에서 언급된 지명이 바로 각각의 시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치부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남유다의 시조이고, 야곱은 북이스라엘의 조상이며,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은 갈릴리 위쪽에 사는 에돔족으로 여긴다.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후 통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요시아 왕은, 두 왕국의 전설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성서에 세 사람을 하나의 가문에 포함시킨다.

모세의 출애굽도 없었고 가나안 정복도 물론 없었으며 심지어 다윗과 솔로몬의 화려한 시대도 없었다고 한다.
다윗은 그저 산악지대의 작은 군벌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성경에 악한으로 묘사된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야 말로 솔로몬 전설의 실제와 부합하는, 강성한 국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정통성이 유다 왕국에 있다는 것이야 말로, 성경 집필의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요시아 시대 집필가들은 오므리 시대의 영화를, 통일 왕국 시대였던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로 각색했고 오므리 왕가는 저주받은 지배자로 격하시켰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다.
특히 므갓도 발굴을 계기로 북이스라엘의 번성했던 도시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상대적으로 남쪽 유다는 매우 왜소하고 약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저자는 성경 외의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위와 같은 위험한 주장들을 서슴없이 내세운다.
사실 성경은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고 보는 태도야 말로 성경의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 가장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과 발굴 성과를 오히려 성경에 끼워 맞춰 해석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성경학자들도 고고학적 발굴 성과, 즉 성경 이외의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긴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성경은 하나의 민족신화로 격하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요시아라는 인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한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도 없지 않다.
다른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이래저래 믿음이 많이 흔들리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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