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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과천 도서관에서 대출 권수를 다 채우고 싶은 욕심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급하게 골라 들었다.
원래는 <오픈북>을 빌릴까 했는데 바로 옆에 이 책이 있었고, 그래도 노벨상 받은 작가의 독서론이 더 나을 것 같아 이걸로 집어 들었다.
독서에 관한 책 중 재밌게 읽은 책은 그나마 표정훈의 에세이 밖에 없다.
다치바나 책도 그런대로 재밌게 읽긴 했지만 하여튼 그닥 유용한 것은 없었고 그나마 앞의 두 사람은 글솜씨가 있어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책을 워낙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왠만한 충고는 귀에 들오지 않는다.
마치 우등생들에게 공부 잘하는 비법을 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책 자체가 너무 좋고 내 나름대로 확고한 독서관이 있기 때문에 어설픈 충고 따위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수집벽이 있는 쪽도 아니라서, 장서가의 에피소드도 그닥 흥미를 못 끌고 만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독서론에 관한 책은 안 읽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책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대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책을 다루는지, 한 달에 책값으로 얼마나 쓰는지, 서재는 어떻게 꾸미는지 등등 소소한 세부사항들에 대해 관심 때문에 책에 대한 책이 나오면 꼭 한 번씩은 들춰 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비교적 이 책에 만족한다.
전부를 다 재밌게 본 건 아니지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장서 수집이야 말로 극도로 섬세한 스포츠라는 재치있는 문구에 무릎을 탁 칠만큼 공감했다.
헌책방을 찾아 다니고 혹은 책 사는데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스포츠,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섬세한 손길을 요하는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스포츠다.
육체적인 활동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정서적 만족을 위한 훌륭한 게임이고 경쟁심도 유발시키기 때문에 애서가들이 이것에 몰두하는 것이리라.
언젠가는 나도 개인 서재를 갖고 싶다.
헤세의 지적처럼, 빌려 읽은 책은 그걸로 끝이다.
문득 다시 읽고 싶어질 때 내 책장에 꽂혀 있지 않으면 재음미 할 수 없어진다.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는 명확히 다르다.
물론 어떤 책은 두 번까지 읽을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지만, 적어도 고전이라면 한 번 가지고는 부족하다.
인문학이나 과학 서적도 마찬가지다.
정독을 두 번씩 할 필요는 없겠으나, 부분적으로 다시 들춰 보고 확인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헤세는 남독은 나쁜 습관이라고 경계한다.
물론 나도 안다.
일주일에 몇 권을 읽겠다는 욕심에 무리해서 속도를 내면 나중에는 권 수 채우기에 급급하고 자꾸 마지막 페이지를 들추게 된다.
그렇지만,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읽고 싶은 책은 널려 있다.
쏟아지는 신간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란 말인가!
나는 비교적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언제나 부족하다.
남독은 책을 사랑하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운명 같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작가의 전문성과 성실함이었다.
책의 소재나 주제가 아무리 좋아도 기술적인 부분, 즉 구성이나 문체 등이 탄탄하지 못하다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120% 공감한다.
아무리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어도 구성이 조악하다면 그것은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다.
내용이 먼저냐, 기교가 먼저냐고 묻는다면 나는 적어도 예술이라면, 기본적인 묘사력, 구성력이 우선이라고 답하겠다.
간단히 말해서 서정주의 개인사를 욕할 수는 있어도 서정주 시가 가치없다, 이렇게 평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작가와 작품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냐고 묻는다 해도, 혹은 작품에 담긴 정신이 기교보다 중요하다고 해도, 하여튼 예술 작품이 형식적으로 완성미를 띄지 못한다면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다고 본다.
세계고전문학에 대한 욕구는, 책을 읽으면서 더해졌다.
고전은 정말 의무감에라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워낙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항상 뒤로 미뤄졌었다.
여기 소개된 책들의 제목만 들어도 당장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올해는 독서 목록에 꼭 고전도 포함시키겠다.
읽고 또 읽는 것,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 위대한 작가의 묘사력에 감탄하는 것, 작가의 사상과 자아를 발견하는 것,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고민하는 것, 고전을 읽는 즐거움이야 말로 인류 문화의 정수를 느끼는 길 같다.
뒷부분의 헤세 연보를 보니, 85세로 장수했고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 아내와의 사이에 적어도 아들이 세 명은 있었고, 불행히도 아내는 정신분열증에 걸려 헤세와 이혼한다.
40대 초반에 재혼을 하는데, 그녀의 요구로 겨우 3년만에 다시 이혼하게 된다.
50대 때 삼혼을 하게 되고 이 결혼은 끝까지 유지된다.
개인적인 불행을 보는 기분이 들어 착잡했다.
한 여자와 만나 평생을 해로하는 일이, 유명인이나 위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 헤세에 대해서는 그닥 흥미가 없다.
어렸을 때 <수레바퀴 밑에서> 를 워낙 재미없게 읽어서였을까?
원래 나는 명상적이고 자조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데미안> 은 퍽 인상깊게 읽었다.
에바 부인이라든지, 카인의 표적을 말하는 데미안의 독특한 정신세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헤세에 대해서라면, 그의 책보다는, 전혜린이 독일 유학 시절 헤세에게 팬레터를 보내 답장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면 이 분도 상당히 현대 사람인 것 같다.
혹은 전혜린이 꽤 오래 전 사람이든지.
192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