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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I. A. 브로드스키 지음, 이현숙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기대했던 것보다 산만하다.
도판도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책 크기가 크지 않아서 시원하게 그림을 볼 수 없었다.
중간에 레핀의 그림을 많이 소개하긴 하는데, 책 판형 때문인지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었다.
비싼 가격에 비해 책 자체의 질은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뒷부분에 나오는 레핀의 편지 부분은 안 싣는 게 나을 뻔했다.
차라리 한 권으로 엮어진 책을 번역하던지, 아니면 직접 작가가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운 대목이다.
이것 저것 취사 선택해서 번역한 것이 책의 통일성을 해치고 있다.
내가 왜 레핀의 그림에 감동을 받는지 책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무한한 감동을 받았던 "볼가강의 인부들" 을 보면 배를 끄는 인부들의 각 캐릭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단지 고통스러운 농노들의 비참한 삶을 드러내기만 했다면 오히려 이념적이고 감상자의 마음도 편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이념에 함몰되지 않았다.
레핀의 표현대로 그림 자체가 훌륭하지 않다면 아무리 주제가 뛰어나도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드러난 그 세밀한 인상들을 보라!
차르의 압제에 희생되는 가엾은 농노 무리로 전락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개개인으로 묘사한 그의 탁월한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덧붙여 강 주위를 감싸는 대기와 주변 배경은 또 얼마나 조화로운지!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그림도 정말 볼 때마다 감동을 하는 그림이다.
행렬에 어떻게든 끼어 보려는 꼽추를 어쩌면 그리도 생생하게 그렸는지!
확실히 레핀은 인물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지녔다.
그래서 초상화도 많이 그렸던 모양이다.
볼가강의 인부들 같은 경우는 무려 11년에 걸쳐 제작한 그림이고, 무수한 인물 스케치를 했다.
십자가 행렬 역시 인물 하나하나를 수십 번 그렸고 밑그림을 여러 차례 그렸다고 한다.
<자포르쥐에 카자크들> 은 또 어떤지!
터키 술탄의 항복하라는 편지를 받고 깔깔대는 카자크인들의 웃는 모습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낸다.
처음 레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가 그린 니콜라이 2세의 초상을 봤을 때다.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훌륭한 초상화였다.
누가 이 단아하고 감수성 예민한 청년을 압제자 차르라고 생각하겠는가?
인물의 개성과 속내까지 드러내는 그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레핀의 전문 분야였다.
오히려 나는 훌륭한 평을 받는, "선동가의 체포" 나 "아무도 기다리자 않았다" 등은 그저 그렇다.
"이반 뇌제" 같은 경우도 정교하지 않아서 그런지 큰 감동은 없다.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가 좋다.
레핀은 86세의 긴 생애를 산다.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뒀고 그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도 훌륭한 초상화로 남아 있다.
어떤 그림들은 마치 인상파 그림처럼 보인다.
굉장히 다양한 표현 기법을 구사했던 것 같다.
인상파 화풍으로 그린 그림은 꼭 마네의 그림 같아서 마음에 든다.
국민 회의, 를 그린 후 오른손을 못 쓰게 되서 왼손으로 그려 보려고 했으나 기존의 명성을 지키지 못해 노년에는 가난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한다.
모아 놓은 재산이 별로 없었나?
소비에트 건설에 반대하여 핀란드에서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쓸쓸한 만년이 슬프다.
고수머리에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화가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세월에 그의 진품을 보러 러시아로 날아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