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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사 -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이진숙 지음 / 민음인 / 2007년 12월
평점 :
재밌게 읽었다.
이주헌이 쓴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와 비교해 봤을 때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든다.
아마도 저자가 러시아 미술사를 전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도상학적이고 서술적이라는 단점도 있다.
아주 전문적이지는 않으면서도, 마치 미술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이야기들을 다소 지리하게 늘어 놓는 경향이 있어 어떤 부분에서는 감상에 방해가 될 때도 있었다.
도판도 다소 불만스럽다.
책의 표지나 편집 등은 비교적 만족스러운데, 양면에 배치한 그림들이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한 면에 실어 놓는 게 어땠을까 싶다.
대작이라면 아예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보여 주던지 말이다.
구글을 통해 확대된 그림으로 봤던 일랴 레핀의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 이나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같은 경우, 그 생생한 묘사는 책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니 직접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을 수 밖에.
절대주의를 창시한 말레비치의 정사각형 그림은 이번 러시아 거장전에서 봤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이게 무슨 그림이냔 말이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그것이 명화라고 인정받기 때문에 교양있는 척 하려고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림이 주는 울컥한 감정이라든지, 고양되는 기분, 뭔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무리 평론가들이 훌륭한 그림이라고 치켜 세워도 나에게 감동이 없으면 그런 그림은 볼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데 책에 실린 말레비치의 다른 그림을 보고 의외의 감동을 받았다.
역시 사각형 하나 그려놓고 20세기의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은 것은 아니었다.
절대주의에 도달하기 전까지 인상주의나 신인상주의, 원시주의 등 각 화파의 화풍을 실험하듯 그린 그의 구상 작품에서 새로운 감동을 느꼈다.
마네나 모네 같은 프랑스의 인상주의자들 그림만 멋있는 줄 알았더니 러시아의 이 위대한 화가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림을 그렸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절대주의 보다는, 구상 그림들이 훨씬 마음에 든다.
칸딘스키의 화려한 색체 감각도 마음에 들고 특히 샤갈의 꿈속 같은 환상적인 그림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레핀만 관심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관심가는 화가들이 많아졌다.
니콜라이 게의 "최후의 만찬" 도 마음에 들고 브률노프의 아카데미적인 화풍도 과연 레핀이 찬탄할 만큼 훌륭하다.
이동파의 기수였던 크림스코이의 "미지의 여인" 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리코프의 역사화도 빼 놓을 수 없다.
시슈킨이나 사브라소프가 그린 러시아의 풍경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과연 러시아 미술은 리얼리즘이 돋보이면서도 결코 내용면에만 치우치지 않고 환상적이고 과감한 형식도 기꺼이 시도했다.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거대한 공동체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