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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노트북을 바꾸고 나서 훨씬 더 편해질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다.
일단 자판 치는 게 불편하다.
이 모델의 리뷰에서 읽었던 것처럼 워드 치는 게 상당히 불편하다.
구절을 옮겨 적을 때 자꾸 오타를 치게 된다.
하여튼 새 노트북으로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옮겨 적었다.
사실 이 책도 기대했던 바에 미치진 않지만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과학자가 아닌, 과학사가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사람 책을 통해 많이 배웠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을까?
내가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설명 체계를 원하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에서 여러가지 상상력이 작용해 미신과 설화 등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간 사회에 전래되어 내려오는 여러 불가사의한 전설들은, 당시 사람들이 자연현상을 나름대로 이해한 결과물이 아닐까?
또 인간은 희망을 원한다.
희망 역시 진화의 한 산물 같다.
장애물로 가득찬 자연 환경을 이겨낼 힘,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소망, 하늘을 날고 싶은 꿈, 죽은 후에도 생이 있다는 믿음,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바라고 꿈꾸던 것들이 아닌가?
이런 희망적 사고 때문에 여러가지 믿기 힘든 기적 같은 일,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초자연적 일들을 믿게 되는 것 같다.
당장 사후 세계만 해도 그렇다.
죽으면 끝이라니, 이걸 어떻게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임사체험을 의식 상태의 변성으로 설명한 이론은 재밌었다.
마약이나 환각제 등을 먹으면 뇌의 화학 수용체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지각의 변화가 생긴다.
몽롱하고 날아 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주변 사물들이 왜곡되어 보여진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 뇌에 그러한 화학물질들이 작용할 수용체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신기하다.
이른바 사후 세계를 체험했다거나, 신이 내렸다거나, 죽은 이를 봤다거나, 하는 등등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어쩌면 저자의 주장처럼 의식 상태의 변성 때문에 생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의식 상태란, 깨어 있을 때 명료하게 사물을 인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변성된 의식이란,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이나, 죽기 직전에 뇌에 산소가 부족한 상황, 환각제를 먹었을 때 같은 특수한 경우의 의식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뇌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의식이라는 것도 뇌의 진화 산물인 것 같다.
뇌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영혼과 정신 세계, 의식, 초감각 같은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개념들에 대한 해답을 주리라 믿는다.
홀로코스트가 실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 책에서 처음 접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유대인 희생자 수가 600만명이 아니라 60만명에 그쳤다거나, 혹은 가스실이 계획적으로 집단살상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고, 단지 쓰레기를 소각시키기 위해 있었다든가, 혹은 독일이 유대인을 집단적으로 학살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단지 추방만 하려고 했고 전쟁에서 몰리다 보니 제대로 그들을 돌보기 힘들어져 기아 등으로 죽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그러니까 핵심은, 실제로 제 3 제국 지도자들은, 특히 히틀러는 유대인의 집단 학살을 계획한 적이 없고, 실제 죽은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하려고만 했을 뿐이고 그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어쩌다 보니 운 나쁘게 일부가 죽었다는 거다.
문득 드는 생각이, 5.18 민주화 항쟁도 실제로 죽은 사람은 별로 안 되고, 공수부대는 단지 무기를 탈취해 내란을 일으킨 일부 위험분자들을 진압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서 6.25 때 북한군이 양민 학살을 실제로 거의 저지르지 않았고 다만 과장됐을 뿐이며, 또 더 나아가면 일제 시대 때 징용된 위안부나 학도병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나치가 유대인의 시체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등의 악의적인 주장은 반드시 진위를 가려야 한다.
광개토대왕비문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설이 허구라는 것처럼 말이다.
음모론과 진실은 반드시 구별되야 한다.
나치가 사람 지방으로 비누를 만든 적이 없다고 해서, 설사 그런 잘못된 소문이 유통됐다고 해서, 나치가 저지른 모든 악행, 집단 학살, 인종청소 등이 죄다 믿을 수 없는 일, 실제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증명하기 어려운 일, 악의적인 소문 등으로 둔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진실을 가려야 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하고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고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워서도 안된다.
지난 번 요코 이야기 논쟁에서도 보듯이, 일본의 패망 후 한국에 남겨진 일본 여자가 한국인에게 보복성으로 강간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일본의 끔찍한 식민지 지배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왜 다들 all or nothing 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주장은, 비약이 너무 지나쳐 음모론 이상으로는 생각하기 힘들다.
제일 시원했던 대목은, 증명의 부담이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자들에게, 혹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에게 있다는 부분이었다.
기존의 학설을 뒤엎으려면, 자기가 하는 주장이 기존에 용인되던 학설과 다르다면, 그것이 왜 옳은가를 그가 입증해야 한다.
그것이 주변인의 불리한 위치이고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언젠가 우유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어, 내가 그런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기존의 학설과 다른 주장을 하려면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대야 하고, 더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뭔가 이건 아니다 싶어 나름대로 논리를 편 것인데, 이 책에서 증명의 부담은 소수자에게 있다는 말을 읽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내 반론이 옳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고 이제 수많은 학문 분야의 엄청난 증거들이 진화를 지지하고 있다.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배운다.
진화론이 옳다는 것을 진화론자들이 주장할 필요는 없다.
증명의 부담은, 이제 창조론자들이 져야 한다.
왜 진화가 틀렸는지를 그들이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또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단순히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 가지고는 새로운 사상이 될 수 없다.
A가 아니라면 당연히 B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생명의 기원에 해당되지 않는다.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신이 세상을 6일 만에 현재의 모습 그대로 모든 종을 한 번에 창조했다는 신화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명의 기원이 오늘날 여기까지 온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정교한 이론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들의 설명 체계는 단지 성경에 그렇게 나왔다는 것, 진화론에 이런저런 오류가 있다는 것, 100%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 등이 전부다.
저자의 지적대로, 과연 창조"과학" 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과학은 입증 가능하고 실험 가능한 학문인데, 성경이 유일한 근거인 창조론은 대체 어떻게 창조를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대단한 과학자도 창조론자들과의 말싸움에서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논쟁은 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이 아니라,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도킨스 같은 이들은 아예 무신론을 들고 나오지만, 진화와 같은 과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신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별 득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다윈 같은 현명한 이들은, 가급적 종교에 관한 논쟁을 피했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에서는 여전히 창조론을 과학 시간에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된다고 하니, 굴드의 지적대로 과학의 진보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나라에서 참, 심히 걱정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싶다.
교회가 확대가족 역할을 한다는 점이 근본주의자가 판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종교적인 사회는 아니라 다행스럽다.
전체적으로 재밌게 읽은 책이다.
번역도 그런대로 괜찮고,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처럼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별로 보이지 않다.
이 사람의 다른 책 "과학의 변경지대" 가 나중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더 매끄럽고 재밌는 것 같다.
여기서 자주 인용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유사과학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 외에도, 과학이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는지 등을 밝힌 점도 크게 도움이 됐다.
과학이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류에 대해 열려 있고 교조적이지 않으며, 지식이 누적되고 잘못된 지식은 폐기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기 수정 메커니즘이 작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