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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교수와 함께 읽는 인도 현대사 - 동인도회사에서 IT까지
이옥순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평점 :
언젠가 서점에서 선 채로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힘이 넘쳐 나는 학생 때라 그랬는지 가벼운 책은 서점에서 독파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책 몇 권만 골라도 피곤이 몰려 오는 직장인이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 때 읽은 책의 저자가 바로 이 책을 쓴 이옥순씨다.
그 책은 가벼운 에세이 수준이라 유학생이 썼나 보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교수가 된 모양이다.
솔직히 내용은 살짝 불편했다.
인도가 오늘날 발전이 더딘 이유가 죄다 영국의 식민 지배 탓이라고 보기엔 좀 오버 같다.
내제된 모순은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무조건 영국이 식민 통치를 했기 때문이라니, 그렇다면 영국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도는 선진국이 됐다는 얘기인가?
엄연하게 강력한 신분제 구실을 하던 카스트 제도마저 영국이 나타나고 나서 생겼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건 저자의 명백한 오버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발전이 더딘 이유가 전부 일본 탓이라고 하는 건 자국민이 쓴 책이니 거기까지는 심정적으로 이해를 한다 치자.
그렇지만 적어도 인도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누군가 지적한 바대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에드워드 사이드나 박홍규의 글이 가끔 불편한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불편한 점을 접어 놓고 보자면, 긍정적인 역할로는 영국 식민 통치가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 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막연하게 생각하기를, 그래도 영국은 일본보다는 낫지 않나 싶었던 점이다.
일본의 식민 통치가 워낙 군대식이고 잔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국은 선진국 이미지가 강하고 왠지 문화적 통치를 했을 거라는 환상을 갖기 쉽다.
그래서인지 그래도 일본보다는 영국이 지배한 인도가 낫지 않았을까? 적어도 영어는 잘 쓸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라는 생각이 순진했음을 알게 됐다.
어떤 식민 통치든 근본적으로 상대국으로부터 무자비한 자원 약탈을 자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역시 아무리 선진국인 체 하더라도 결국 똑같은 인간이고 보면, 피지배자인 인도인을 동등하게 대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타고르가 고백한 것처럼 몸은 인도인인데 정신은 영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영국식 교육은 인도의 근대교육을 장악했다고 한다.
한국은 겨우 36년이었으나, 인도는 무려 2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배당했으니, 인도 문화에 끼친 영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어쨌든 오늘날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런 일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IT 산업이 발달하게 됐고 (이를테면 미국에서 인건비가 싼 인도에게 하청을 주는 식으로) 미국계 회사에서 일자리 잡기도 쉽다고 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인도인 변호사들이 워낙 싼 값에 일을 맡기 때문에 미국 변호사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핵심은 인도인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점에 있었다.
하여튼 세상일은 돌고 도는 것이니, 식민통치의 유산이 오늘날 써먹을 데가 있다는 것도 재밌는 역사적 현상이다.
인도는 연방제 국가라고 한다.
인도 아대륙의 크기가 유럽보다 넓다고 하니, 이 정도로 큰 나라를 200년 씩이나 지배한 영국의 힘도 참 대단하다.
중국 같은 경우는 워낙 컸기 때문에 한 나라가 장악하지 못하고 덕분에 식민 통치도 면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인도가 왜 그렇게 쉽게 영국에게 무너졌는지 모르겠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인이 오기 전에 무굴 제국은 최고의 국력을 자랑했으며 (?) 인도는 근대화를 곧 맞을 예정이었다는데...
하여튼 숫자가 워낙 적은 영국인은 벵골 지방을 중심으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나머지 지방은 지방왕국들을 간접 통치하는 식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인도에서 한 번도 군사 정권이 탄생하지 않은 배경이 재밌다.
호전적인 시크 교도들을 군대에 중용했던 영국의 정책 때문에 독립 후에도 여전히 군부대를 장악하는 건 소수 민족이라고 한다.
그러니 정치와 무관할 수 밖에.
또 인도는 비록 네루가의 38년 장기집권을 경험하긴 했으나 비교적 민주주의가 잘 유지된다고 한다.
문제는 네루가 공산주의식 폐쇄 경제를 선택했다는 데 있다.
젊어서부터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네루는, 자급자족을 목표로 대외무역을 중단하고 자국내 공업화를 추진했다.
결과는 물론 실패였다.
90년대 후반부터 개방경제로 바꾸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면서 BRIC의 하나로 떠올랐다.
다행인 것은 IT 산업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아 국가가 75%의 재정을 지원하는 IIT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오늘날의 IT 강국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도자의 혜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우리도 박정희가 개방경제를 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경제력은 어려웠을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는 역사의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겠지만 적어도 개방경제를 택한 점은 그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주의는 근절할 수 없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점이 바로 영국인의 인종주의적 시선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도의 오랜 관습인 카스트 제도도 드라비다인과 아리아인을 나누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인간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보면 좋고 나쁠 것도 없는 너무나 비슷한 종인데 왜 이런 근거없는 우월감을 갖는지 모르겠다.
세포이 항쟁 때 세포이들이 영국 여성을 강간했다는 것이 마치 없는 사실을 유포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 부분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인도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큰 탓인지, 영국 여성의 희생마저도 영국 정부의 과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요코 이야기, 에서 문제가 됐던 점, 즉 한국인이 패망한 일본 여성을 강간했다는 것도 전후라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민족주의라는 명분 때문에 약자의 희생을 감추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또 인도 여성의 순장 풍습인 사티나 여아 결혼 같은 문제도 타파해야 마땅한 관습이 아닌가?
단지 지배자인 영국의 강제에 의해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악습 타파를 나쁘게 얘기하는 건 어딘가 형평성이 맞지 않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나치게 인도 편향적인 입장에서 쓴 책이라 객관성이나 비판적 시각이 부족하다.
감정적인 서술도 너무 많아 인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도 현대사에 대한 책이 드물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쓴 관련 서적을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