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변경 지대 -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마이클 셔머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퍽 재밌게 읽은 책이다.
사실 이 책보다는, 이번에 새로 나온 저자의 다른 책,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의 홍보글을 보고  이것보다 먼저 번역된 "과학의 변경지대" 를 읽게 됐다.
시간상으로는 이 책이 나중에 쓰여졌는데, 번역이 먼저 됐던 모양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칼 세이건이 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을 읽고 싶어진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지루하고 어려워 읽다가 던져 버렸는데 다시 읽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굳이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이런 회의주의야 말로 내 신념과 100% 일치하기 때문에, 굳이 책을 읽어 설득당할 필요가 없기 때 문이다.
오히려 이런 책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선 상의 사람들이 읽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확신범이기 때문에 동어반복인 이런 책들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마다 참 재밌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하여튼 나는 진화론에 100%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창조론 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다만 이런 책들은 읽고 싶다.
진화론자이면서도 독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지, 그런 갈등을 해결해 주는 책은 읽어 보고 싶다.
도킨스의 책이 재밌으면서도 가끔은 섬뜩한 것은, 그가 신을 발명품 취급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건데, 나는 理神論 자가 아닌가 싶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때 유행했던 사조인데 다윈도 바로 이신론자였다고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믿지만, 신의 계시나 초자연적인 기적은 믿지 않고, 세상은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내 생각을 정확하게 대변해 주는 사상이다.
신앙인과 진화론자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 평형설을 새롭게 알았다는 점이 기쁘다.
나중에 읽어 볼 생각인데, 리처드 도킨스가 그 이론을 비판했다는 점만 알고 있었을 뿐 대체 무슨 얘기인지  몰랐었다.
왜 중간 고리의 화석이 없냐는 질문이야 말로, 창조론자들이 제일 들먹거리는 비난이다.
단지 발견을 못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굴드의 주장처럼, 발견되지 못한 게 아니라, 미처 화석으 로 만들어질 시간이 없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종의 변이는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화석으로 보존될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말보다는, 이 이론이 훨씬 합리적으로 들린다.
에른스트 마이어가 주장했고 굴드에 의해서 유명해진 이론이라고 하는데, 고생물학계에서는 새로운 패러다 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을 부정한다는 것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 같은 다윈주의자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하지 만, 저자의 지적처럼 패러다임이 반드시 모든 과학계를 다 포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적어도 고생물학계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아닌가 싶다.

칼 세이건의 평전이야 말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이었다.
이 사람이 쓴 책 몇 권을 워낙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무척이나 좋아했던 과학자다.
특히 그의 마지막 에세이, "에필로그" 를 감동하면서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백혈병에 걸려서도 마지막까지 긍정적인 생각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재기발랄한 글을 썼다는 점이 무척 이나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도 칼 세이건이 단지 대중 매체에서만 유명한 건지, 아니면 정말 과학자로서 인정을 받았는지가 궁 금했었다.
저자처럼 제대로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다면 평전도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전을 읽을 때 짜증이 나는 까닭은, 저자가 지나치게 대상을 영웅시 한다는 점이다.
물론 영웅은 대중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마치 연예인처럼 우리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나 역시 위대한 영웅의 업적을 읽으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렇지만 정도가 있지, 너무 오버하고 너무 신격화 시켜 버리니, 감동이 확 줄어 버린다.
독자의 수준을 너무 무시한 게 아닌가 싶고, 실제로 전기를 쓰는 작가들의 수준도 한참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칼 세이건의 업적을 수치를 통해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그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를 다른 유명 과학자들과 비교한다.
역시 열정적인 사람이라 방송 출연 횟수만큼이나 학회지 발표 횟수도 엄청나다.
나는 이런 열정적인 사람이 좋다.
그가 과학계에서 받는 평가가 인색하다 할지라도 유사과학이 판치는 이런 험한 세상에 마치 과학이라는 진 리를 전파하는 전도사 같은 과학저술가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학자가 대중 매체에 글도 잘 쓴다는 건 아주 힘든 일 아닌가?

천재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기억에 남는다.
모짜르트가 평균적인 인간에 비할 때 엄청난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단 한 번도 악보를 고친 적이 없다는 식 의 문구는 대체 어떻게 나온 건지 모르겠다.
이런 식의 신격화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저자는 끝없는 노력이야 말로 천재를 결정짓는 가장 큰 특성이라고 설명한다.
수많은 반복, 열정,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력, 이런 것들이 평범한 인간을 천재 로 만든다.
물론 유전적인 특성도 중요하다.
유전과, 속해 있는 문화 환경이 한계점을 만들 것이다.
천재는 인간의 범주나 한계를 결정짓는 사람이라는 저자의 정의가 재밌다.
희망을 얻어서, 열심히 공부를 좀 해 볼 생각이다.
누구나 자신의 한계점까지 애를 쓰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니, 오늘부터는 좀 열심히 일을 해 봐야 겠다.

전체적으로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다.
나 같은 회의주의자들 입맛에 딱 맞는 책이라 거부감이 들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역자의 성실한 번역과 후기도 돋보인다.
역자가 소개해 준 책도 함께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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