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트런 - 명화로 읽는 미술 후원의 역사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 눌와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다카시나 슈지의 책은, "명화를 보는 눈" 을 먼저 읽었다.
꽤 재밌게 읽은 책이라 이번에도 기대를 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비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이주헌씨처럼 글을 잘 쓴다.
어떤 책을 내도 기본적으로 읽을 만 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사실 제목만 가지고는 흥미 위주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프랑스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미술관장이라 그런지 전문가적인 냄새가 확 난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미술 비평도 수준 있다.
특히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추가한 많은 칼라 도판 덕분에 이해가 훨씬 쉬웠다.
역자 후기에서 그림을 칼라로 실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라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도 감성은 늙지 않고 읽어 볼 만 하다.
시대를 넘어서 출간되는 책은 확실히 생명력이 있다.

25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이 말해 주듯, 내용 자체는 아주 평이하다.
일반 독자들도 지하철 안에서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수준이다.
그림이 워낙 많이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고 보면 서양 예술의 전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훨씬 깊고 탄탄한 것 같다.
르레상스가 시작되는 15세기에 이미 은행가조합이 생기고, 직물조합이 생기며, 직업적인 화가들이 등장한다.
자본주의야 말로 예술 발전의 원동력임을 새삼 확인했다.
문화란 잉여생산물이 의식주 이외의 것, 이를테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쓸데없는 것들에 투자할 정도로 풍부해질 때 발생하는 것 같다.
결국 그런 이유로 계급 격차는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면, 예술 같은 사치스러운 창조물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결국 먹고 사는 데 아무 쓸모도 없는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산업혁명 이전의 평범한 백성들은 굶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런 희생 아래 오늘날 위대한 인류 문화의 정수들이 완성된 게 아니겠는가?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익숙하다.
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를 그리게 하고, 라파엘로에게 그 유명한 아카데미아 벽화를 그리게 만든다.
르네상스 최고의 후원자였던 셈이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까지 거침없이 팔았다고 하니, 확실히 한 인간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일 수 밖에 없다.
라파엘로는 단순한 화가가 아닌 궁정인으로서 대접받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라파엘로 같은 화풍이 마음에 든다.
화려하고 살아 움직일 것처럼 정교한 그런 고전주의 작품이 좋다.
라파엘로는 요즘으로 치자면 사교계의 명사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작위적이라고 하여 라파엘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는 라파엘 전파 같은 화파도 생겨났지만, 오히려 그 말이야 말로, 라파엘이라는 화가가 미술사에 얼마나 큰 획을 그었는지 새삼 느끼게 해 준다.

프랑수아 1세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관계라든가, 카를 5세와 티치아노, 혹은 펠리페 4세와 벨라스케스의 관계 등은 예술가와 패트런의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이런 개인적인 후원가는 사라지고, 대중이 패트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록펠러 같은 재벌들이 미술품을 사들이는 큰손 노릇을 하긴 하지만, 근세처럼 개인적으로 그림을 부탁하는 형식은 아니다.
그래서 구입자와 창조자를 연결시키는 화상이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양 미술의 발전은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현대 국가의 예술 후원 정책으로는, 퍼센트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건물을 세울 때 총 건축비의 1%를 예술품 구입비로 책정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지원책 같은데, 이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90% 이상의 지원을 몇몇 유명 예술가들이 독식하고,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양식보다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하여튼 서구 선진국의 예술 후원 정책은 대단하다.
일본에서도 이미 시행 중이라는데 한국의 실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퍼블릭 아트라고 해서, 공공미술이 중요시 되고 있다.
확실히 벽화 등으로 장식된 지하철이나 건물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
후대 사람들도 우리 세대의 공공미술을 미술사의 흐름으로 평가하게 될까?

중세에는 귀족이나 왕 같은 상류 계층만 즐겼던 미술을, 이제는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눈이 호사를 한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서 문제가 될 정도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예술의 발전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니, 두터운 패트런 확보도 예술 발전에 매우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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