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근대 -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박지향 교수의 책이라면 이미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또 지난 번에 봤던 책,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에서도 그의 논문 한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존재는, 바로 그 논문에서 알게 됐다
마음에 드는 학자였고 무엇보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근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로워 상당히 기대를 하고 본 책인데 100% 만족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영국 역사를 쓴 책에서는 번뜩이는 재치가 빛났는데 한국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비록 일반 대중에게는 다수의 정서이나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청산해야 할 과거 유습이라는 지배가 다수인지라, 학자들이 외치는 민족주의 극복이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타자성 극복 역시 새로울 것은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민족주의 정서가 퍼진 것은 겨우 식민지 시대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즉 일본에 대한 대항 논리로써) 과거에는 외세와의 접촉 자체가 없었으니 민족주의라 이름붙일 만한 현상조차 없었을 것이다
즉,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민족주의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인은 일본이나 여진 등에 대한 타민족에게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만 봐도 얼마나 극렬하게 그들을 배척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겠지만, 근대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일본이란 국가의 저력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줬다는 자부심 때문에 갖게 되는 우월감 자체가, 사실은 과거부터 실체가 모호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하수로 여겼던 것만큼, 일본이 조선을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은, 그저 막연하게 남을 우습게 보는 유아독존적인 유치한 감정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일본은 조선과는 매우 다른 별개의 문화를 만들어갔고 유교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중국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과연 조선에 대해 얼마나 문화적으로 고마워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지도층이 사생결단을 내고 전력한 결과였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당연히 고종을 위시한 왕조 세력가들의 무능함과 부패다
이상하게도 식민지배의 책임은, 을사오적을 비롯한 일부 친일파에게만 국한됐고 정작 조선을 대표하는 당사자, 고종과 민비 등에게는 동정론이 퍼져 있다
마치 고종은 외세와 친일파들에게 휘둘려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하게 죽은 가엾은 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고종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일까?
만약 그런 식으로 동정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무능함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민비나 아버지 대원군에게도 휘둘렸던 걸 보면 아마도 고종은 난세를 헤쳐나갈 군주감은 못됐던 것 같다
이미 국운이 쇠락해져 누가 왕이 됐더라도 왕조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등의 군주였다면 그런 식으로 힘 한 번 못 써 보고 식민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따지면 이른바 "조선의 국모"라는 명성황후의 부패상과 정권욕도 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외세 침입 때문에, 즉 나쁜 놈들 때문에 착하고 선량한 조국이 멸망했다는 식의 자조론은, 저자의 말마따나 발전지향적인 미래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 경제력이 일본을 압도할 때야 비로소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이나 혹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한국 여행기는 읽은 적이 있다
항상 원자료가 2차적인 해설서 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원자료를 분석할 수준이 될 때 하는 얘기라는 걸 이번에 느꼈다
물론 "한국과 이웃나라들" 을 재밌게 읽긴 했으나 박지향 교수가 분석한 글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시대적 의미나, 혹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윤치호 일기가 국역됐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가 그 복잡다단함에 놀라 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은 워낙에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그런지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 보다 100배는 재밌게 읽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원자료 보다 해설서가 아직은 더 쉽게 다가온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지 통치는 이 책에서도 영국인의 눈을 통해 확인된다
영국이 간접 지배를 선호했던 데 비해, 일본은 완전 동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억압과 반발이 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윤치호 같은 사람은 이왕 식민지라 될 바에야 일본보다는 영국이 낫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간접통치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영국인이 훌륭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박애와 사랑 정신에 가득차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영국은 워낙에 광대한 제국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100% 복속시킬 수는 없었다
여력이 안 됐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전면적인 동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동화 정책이 심한 억압과 함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당시 영국 제국주의 관료들에 따르면, 일본이 동화 정책을 포기하고 간접 지배 쪽으로 돌아선다면, 즉 보다 인도적으로 그들을 지배한다면 한국인은 식민 지배를 유순하게 받아들였을 거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 정책은, 당시 같은 편이었던 영국 관리들 마저도 고개를 흔들게 만들만큼 끔찍했다고 하니, 식민지를 살아 낸 조선인들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구한말 조선인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한말 사진을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인데, 대체 왜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도 무표정했다는 말인가?
요즘 눈으로 보자면 상당히 촌스럽기까지 하다
매우 평면적이고 뚱한 느낌을 준다
고위 관리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난 단지 오래된 사진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당시 한국을 방문한 유럽인들도 나처럼 조선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기라는 신식 물건에 너무 긴장해서인가?
아니면 원래 전근대는 개인의 감정이 무시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여서인가?
비슷한 시대의 다른 나라 사진들도 좀 구해서 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일본인은 보다 화사하고 생기있게 느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한창 국력이 물오를 때였으니 유럽인들이 생동감 있게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또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본의 판화를 보면, 꽤나 강렬하게 역동적인 색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는 동양 국가였을 것이다

비숍 여사가 식민지 관리였던 커즌과 달리, 젠더라는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소수자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타자성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인도의 부왕까지 지낸 커즌의 여행기와, 개인 여행가에 불과했던 비숍의 여행기가 다른 관점이었음은 당연하다
근본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 혹은 영국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을 우상시 하고 따라잡을 목표로 봤던 일본에서는, 젠더보다 인종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훌륭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 서양을 배척해야 할 오랑캐로 간주했던 조선에서는 (아마도 일반 민중들까지 서양 기술력의 위대한 실체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종보다 더 앞선 것이 젠더였다
동방예의지국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생각하던 당시 양반 계층조차, 비숍 여사의 눈에는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있다
상대적으로 커즌은 남자였기 때문에 관으로부터 지극한 대접을 받았고 여행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관이나 양반 계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충고까지 적어 놓는다
그러나 비숍 여사는 관의 협조문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마을을 가든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
19세기 조선인의 눈에는, 여자 혼자서 먼 이국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계급적인 부분은 (민족이나 젠더, 직업군,인종 등 모든 신분을 망라해서)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단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도 현지인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백인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백인의 특권까지 거부해 버린 것이다
반면 커즌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비슷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민족주의나 집단적인 대응이 근본적으로는 싫지만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개인은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관용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아무리 완벽한 개인의 시대를 외친다고 해도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민족이나 젠더, 인종, 종교 등으로 명명될 수 밖에 없고 완벽한 개인의 시대란 어쩌면 영원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비극적인 느낌이 든다
결국 국가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아나키즘 역시 유토피아 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란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아나키즘의 시대가 아니라, 유럽 연합이나 미 합중국 같은 느슨한 의미의 지역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이나 민족주의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끈질기게 유지할 것 같다

300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고 서술도 평이해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관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근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윤치호 일기를 분석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제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말고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다른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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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도 재밌을 것 같고요. 전 한국 밖에 있으면서 일본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가까이 있었을 땐 거의 아는게 없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