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이근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서 신간 발매 소식을 들은 후 무척 읽고 싶었던 책이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한 후 잊어 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과천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그나마 누가 오랫동안 대출해 가서 정말 몇 번 고생 끝에 얻은 책이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기대하면 실망도 큰 법인데, 어느 정도는 내 기대를 충족시켰다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사료를 공평하게 보려는 책의 시각이 마음에 든다
일본서기 중 우리에게 유리한 점만 취하고 불리한 점은 위서라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질책한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왜가 한반도 일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지지한다
이를테면, 광개토대왕비의 그 문제많은 단락, 한반도 남부에 군사를 파견한 주체가 광개토대왕인지 왜인지에 대해, 문장 그대로 해석하여 왜쪽을 지지하는 편이다
이성시의 책에서도 읽은 바지만 없는 단어를 일부러 끼워 넣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 격이 될 것 같다
이희진과는 달리 저자는 물론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긴 하지만 왜의 존재가 한반도 남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에 나온 그대로 일본 열도 자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지나치게 작의적인 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더 신뢰가 간다
관상성 전투에서 성왕이 느닷없이 죽은 것을 우연적인 사건으로 본 점은 이희진과 동일한 시각이다
아마도 일본서기를 참조해서 같은 결론이 나온 것 같다

한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시각을 부정한 점도 신선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단군 아래 한 자손이라는 개념은 극히 민족주의적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외침이 심했던 고려 시대, 혹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던 일제 시대에 민족 단합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개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지껏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국민들에게 납득이 됐고 여전히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의 이입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통합 모델을 필요로 하는 현 시점에서, 과거의 한민족 개념을 부정하는 다민족 이론이야 말로 역시나 새롭게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똑같은 논리의 이론이 아닐까?
어쨌든 다양성의 존중, 민족주의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보면 과거 한반도의 민족구성이 다채로웠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맥족, 예족, 부여족, 남방족, 여진족, 말갈족 등등 여러 계통의 민족이 모여 한반도에서 부대끼고 살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특히 제주도가 고려 시대까지 독립왕국이었다는 가설 제기는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전라도 지방도 처음부터 백제가 지배했던 곳이 아니고 마한의 잔존 세력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무령왕 이후에나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면서 세력권을 넓혔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중국의 산둥 반도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얘기는 어처구니 없는 학설이 되고 만다
단지 지역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식민지였을 것이라는 추론 자체를 거부한다
나 역시 황당무계한 가설이라고 치부하는 쪽이라 이 점은 반가웠지만 이덕일 같은 민족사학자와의 대담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고구려의 역사" 를 쓴 이종욱이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데, 고구려의 지배 범위를 축소해서 생각하는 쪽이고 발해도 한국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 일반인들로부터 어용사학자라는 비난을 많이 받는다
이근우씨도 민족주의 사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이종욱씨와 비슷하고 이덕일 같은 사람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책을 읽어보면 무리한 주장이 없고 근거를 분명하게 댄다는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든다

왕인 박사가 양나라 사람일 수도 있다는 과감한 주장은 어떤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해준 백제의 유학자로만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런 주장은, 매국노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 불교를 전한 것도 불교 포교에 힘쓴 아카소 왕처럼, 양나라 무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는 것이, 당시 중국에 비해 백제의 국력이나 규모는 미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백제의 독자적인 힘이라기 보다는, 중국에서 넘어가는 가교 역할 정도라는 게 상식으로 맞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일본의 황실 가계가 백제 왕실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거부한다
오히려 어머니가 비천한 백제계였던 환무 천황이 백제와 일본의 황실 피를 모두 이어받았다는 식으로 모계를 미화시키기 위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백제 왕실을 빌려 왔다는 입장이다
화랑세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화랑세기는 진위 여부 때문에 흥미로운 책인데 나중에 관련서적을 읽어 볼 생각이다
위작 여부에 대한 논쟁이 더 흥미롭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백제가 양나라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무령왕릉을 통해서도 입증한다
벽돌 형식의 무덤이 양나라 기술자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고 관재 역시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백제의 독자적인 문화를 주장하는 우리 학계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좀 있는 셈이다
이 무령왕의 이름이 바로 사마인데, 일본서기에 의하면 그는 일본으로 가는 사신 행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섬에서 났기 때문에 사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무령왕릉에도 사마왕이라는 지석이 있는 걸로 보면 이 일화를 기록한 일본서기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확실히 일본 고대사를 연구한 사람이라 그런지 양쪽 모두의 자료를 취한 점이 돋보인다
이성시가 쓴  "동아시아 왕권의 교역" 에서도 읽은 바지만 정창원에 있는 매신라물해 라는 구입 목록 문서를 보면 일본과 신라의 교류도 꽤 활발했던 것 같다
민족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이라는 점, 일본 고대사의 자료까지 풍부하게 인용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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