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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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김태훈이 진행하는 네비어 캐스트의 방송 내용을 책으로 옮긴 듯 한데, 방송에서 매우 재밌게 들었던 것에 비하면 책의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아, 몇 편 읽다가 말았다.

너무 가볍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루터> 편은 개신교가 태어난 배경과 루터 개인의 신앙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고, 이번에 드가도 꽤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책 디자인과 편집이 너무 세련되고 읽기 편하게 되어 있다.

책은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도판들도 색감이 아주 좋아, 드가 그림의 따뜻한 느낌을 잘 전달해 준다.

방송에서 드가 편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는 솔직히 그림 해석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 거부감이 생겼었다.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는 느낌이랄까?

책에서는 작품 하나하나 보다는 화가의 일생을 다루고 있어 지엽적인 분석이 적어서 훨씬 편하게 와 닿았다.

사실 드가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다.

나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는 마네를 제일 좋아한다.

모네나 르누아르 그림은 내 취향이 아니고 마네의 화풍처럼 평면성과 강렬한 색채감이 마음을 흔든다.

특히 마네의 그림은 크기가 압도적이라, 지난 여행 때 오르세에서 직접 접했을 때 감동이 훨씬 배가되었다.

뻔한 표현이지만,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강렬한 감동을 느꼈다.

21세기의 관람객이 봐도 이렇게 강한 인상을 받는데, 부그로의 우아한 비너스 그림을 관람하던 19세기 파리 시민들이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봤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느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런 마네에게 큰 영향을 받은 이가 바로 드가라고 한다.

드가의 그림은 발레, 경마장처럼 주제가 현대적이고 무엇보다 자연이 아닌, 일상을 그린 점이 마음에 든다.

드가는 자연이 싫다고 했는데 이런 점이 내 취향과 맞는 것 같다.

나도 자연 그 자체는 큰 감흥이 없고 인간의 활동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모네의 수련 같은 그림에 별 느낌이 안 생기는 것 같다.

예술가는 가난하다 생각되기 쉬운데 마네나 드가 모두 지금 기준으로는 상당한 상류층이었다.

귀족은 아니었을지라도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지금의 중산층보다는 훨씬 부유한 계급이라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산을 물려받아 평생 자기가 추구한 길을 고집하다 마침내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된 세잔처럼 말이다.

끝까지 기존 화단의 인정을 바랬던 마네의 경우를 보면, 그럼에도 인간은 인정의 욕구를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책에 묘사된 마네의 성격은 예술가의 재능과 인간성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지만 그런 것도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질 정도로 예술의 아우라가 개인을 압도하는 느낌이다.

드가도 아주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평생 독신이었고 83세까지 장수했던 걸 보면 예술혼이 대단하고 상당히 고집이 셌을 것 같다.

동양에서는 독신이 드문 반면 유럽에서는 꽤 자주 보게 된다.

모네나 마네, 세잔 등도 부모의 반대 때문에 뒤늦게 혼인 신고를 한 걸 보면 유산 상속이나 법적인 결혼에 따른 의무감 등이 훨씬 오래 전부터 갖춰진 느낌이다.

확실히 한국과는 매우 다른 사회인 듯 하다.

당시에도 대가들의 그림을 접하려면 인쇄술의 한계로 판화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서양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색채감인데 동선만 그린 판화로 어떻게 이해를 했을지, 오히려 당시 예술가들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유럽 화가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혹은 루브르로 가서 직접 명작들을 눈으로 보고 모사할 수 있었지만, 조선시대는 아예 관람할 기회가 전무하고 개자원화보 같은, 지금 눈으로 보면 너무 열악한 판본으로 공부했으니,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의 창의성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너무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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