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런 책들은 그만 읽어야겠다.
비슷한 수준의 옛 지리 이야기들이 반복되어 신선하지가 않다.
목표 권수를 채우려고 가벼운 책을 골랐는데 너무 진부한 내용들이라 아쉽다.
분단으로 나눠져 옛 수도인 평양과 개성을 가보지 못함은 무척 아쉽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수도로 자리잡고 가장 가까운 시대의 수도였던 만큼 서울의 옛 지형들이 자세히 연구되고 직접 가볼 수 있는 점은 참 좋다.
남산 올라갈 때 걸었던 성곽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여 시원하면서도 그냥 걸어도 힘든 이 산길에 돌을 쌓아 성곽을 지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옛 사람들의 고단함도 느껴졌다.
기계의 힘 없이 순전히 사람이 등에 지고 날라서 완성했을텐데.
기회가 되면 성곽 답사도 좋을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36p
원래 조선 초기에는 도성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산성입니다. 도성은 궁성, 내성, 외성의 3중 구조로 형성되는 것이 원칙인데 한성은 궁성과 내성에 해당하는 도성만 있는 상태로 세워졌고 외성은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도성은 군사적 목적, 즉 전투를 위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도성만 있던 상황에서 왜란, 호란, 이괄의 난 등 전란이 발생합니다. 전란의 경험을 통해 도성은 군사적 방어기능에 한계를 드러낸 것이죠. 뿐만 아니라 명나라가 건재한 상황에서는 조선과 중국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한성부 서북부 지역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도성을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죠. 그래서 전란을 겪은 이후 조선 후기에 도성을 재정비하느냐 아니면 산성을 새로 구축하느냐에 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결국 도성 재정비와 산성 구축이 함께 이루어지게 되는데, 북한산성은 숙종 대에 완성됩니다. 그리고 북한산성과 한양 도성을 연결하기 위해 탕춘대성을 만들게 됩니다.
214p
서울의 시가지 확산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도성이라는 물리적 장애입니다. 한양 도성은 북악, 인왕, 남산, 낙산을 연결해서 쌓았고 그 안에 분지가 도성 안이었죠. 성 밖이 시가지화되는 것은 바로 자연지형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분지를 넘어 시가지가 확산되는 것이죠. 결국, 인구 증가와 시가지 확산에 따라 도성이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일제에 의한 도성 파괴는 도성 계획상의 장애 제거와 조선의 상징물 해체라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