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의 배신 -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
제임스 C. 스콧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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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이란!

큰 기대없이 그냥 고른 책인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훌륭한 석학들의 책은 수준과 상관없이 논리적 흐름의 일관성과 광범위한 지식 체계를 하나의 주제로 응집시키는 힘이 대단해 마치 한 편의 재밌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사람을 빨아 들이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 한 번에 쭉 읽지 못하고 조금씩 토막내서 읽었는데도 앞뒤 맥락이 전혀 끊기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역자 후기에 쓰인대로 번역하는데 고생을 좀 했을 것 같다.

약간은 어색한 번역투의 문장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에게 하고자 하는 주제들이 잘 전달된다.

제목만 조금더 인상적으로 지었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훌륭한 책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제목이 아쉽다.

앞서 읽은 일본인 학자의 <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와는 다른 관점의 책이라 비교가 되니 더욱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의 주장에 100% 전부 공감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국가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절대적인 권한을 인류 초기 시대부터 행사했던 것은 아님을 밝힌다.

우리가 야만이라고 명명하던 시대는 사실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었을 뿐 우리가 생각하는 암흑과 무질서의 세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역자가 밝힌 바대로 나 역시 유목민이라고 하면 막연히 제대도 된 문화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무리라고만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런 유목민들이 어떻게 몽골과 청나라 같은 거대한 국가를 이루게 됐나 그 점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리의 편견이고 최근까지도 (저자에 따르면 1600년 전까지) 국가는 그저 곡물을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는 극히 적은 부위만 통제하고 있었을 뿐 그 주변은 자유로운 변방인들의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농경의 시작과 함께 국가가 생긴 것이 아니고, 농경 이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여전히 살아가는 집단들이 국가의 변방에 존재했고, 오히려 국가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농민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게 하려고 방벽을 세웠고 부족한 인구를 보충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했다고 본다.

전쟁은 자산의 획득, 그 중에서도 특히 노예를 획득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봐도 노비제가 19세기까지 존재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 큰 생산의 원천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노예제가 사라지고 인류가 평등하다는 것이 당연시 된 것은 생산의 원천이 인간이 아닌 기계로 대체됐기 때문에 더이상 노예제는 효율적이지 못하게 바뀐 탓이리라.

농경의 확산과 국가의 기원과 유지, 그리고 야만의 정의에 대해 살펴본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좋은 책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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