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 조선인들의 북경 체험
손성욱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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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이고 내용도 아주 재밌다.

일전에 읽은 연행록 관련 책처럼 뻔한 조선 사신 루트 나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무척 재밌다.

서문에 단국대 심재훈 교수가 글을 읽어 보고 출판을 의뢰해 줬다고 하는데 이해가 된다.

저자는 북경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중국 대학에서 강의한 독특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중국측 관점까지 책에 잘 녹여 내어 입체적인 글이 된 듯하다.

보통 연행록이라고 하면 김재업, 홍대용, 박지원 이 세 분의 글을 언급하지만 저자는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조선이 독립국이 되어 대등한 근대 조약을 맺어 공사관을 파견한 후까지 기술해 더욱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조선 세자의 책봉 문제였다.

내치에는 간섭하지 않는 형식적인 조공 관계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세자 주청을 올리면 바로 승인을 해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청나라에서는 숙종, 경종, 영조 때까지 책봉에 애를 먹였다.

청나라는 따로 황태자를 정하지 않는 풍습 때문이었을까?

국왕 부부가 50은 되어야 후계자를 세운다는 명의 법전을 들먹이며 어린 세자의 책봉을 거부하는 바람에 조선 사신들은 어떻게든 책봉 교서를 받아 오려고 애를 썼다.

인신무외교 원칙에 따라 신하는 감히 외교를 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관념 때문에 사신들이 실제로 외교전을 펼친 게 아니고 중국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힘을 써달라는 사적인 청탁이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건명은 경종 때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을 어렵사리 받아오지만 국경을 넘어오는 순간 붙잡혀 위리안치 되고 결국 사사당하기까지 했다.

오며가며 반년이나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약간은 비정상적인 왕세제 책봉이라는 결과물을 얻어 왔건만 의주에 들어서는 순간 붙잡혀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형이라니.

이래서 책봉사는 다들 꺼렸다고 한다.

이런 속사정들이 아주 흥미롭게 기술되어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글은 마지막에 실린 주요섭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한 이 분은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국제 달리기 대회에 나가 5000미터 중국 신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손기정 선수를 봐도 그렇고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달리기에 능한 모양이다.


<오류>

169p

강희제의 첫째 아들인 승호가 일찍 죽은 까닭이었다.

-> 강희제의 큰 아들은 승서이고 승호는 둘째 아들이다.

179p

왕비 심씨는 영조보다 두 살 많았다.

->영조의 왕비는 심씨가 아니라 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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