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외 옮김 / 소소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평촌으로 이사온 후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가, 이 동네 주민들이 책을 꽤 많이 본다는 점이다
광주에 살 때도 물론 도서관 열람실에 수험생들은 많았다
그렇지만 책을 빌려 주는 종합자료실은 대부분 텅텅 비었다
특히 내가 빌리는 책들은 일반적인 베스트셀러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지라, 언제나 대출가능이었다
그런데 이 곳 도서관은 열람실 뿐만 아니라 종합자료실에도 책 읽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뿐더러, 빌리려는 책들이 대출중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스페인사" 라던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혹은 "언어본능" 등이 그랬다
언어본능이야 스티븐 핑커가 워낙 유명하니 그런다지만 솔직히 스페인사까지 대출중인 건 좀 놀랍다
나 같은 할 일 없는 사람 말고 대체 누가 그런 쓸데없는 책을 읽는 걸까?
스페인 문화 전공자라도 되는 걸까?
하여튼 이 언어본능도 계속 대출 중이다가 어제 겨우 빌린 책이라 퍽 감격한 상태로 책장을 열었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학자들의 책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사실 연구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들이 대중을 상대로 쓴 책을 보고 평가하게 되는데 확실히 유명한 저술가들의 책은 놀라울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나고 풀어가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를 읽을 때마다 이 놀라운 과학자들의 글솜씨에 감탄하는데 스티븐 핑커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문장력에서 독자를 사로잡을 만큼 탁월하고 주장하는 바가 명쾌해서 그 논리에 탄복하게 된다
언어는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주장이 얼핏  들으면 늑대소년을 생각나게 함으로서 반발하게 만들지만,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과연 그 말이 맞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말은,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해 보지 않고도 먼 거리의 물체를 알아 맞추듯, 인간에게 있어 언어 사용도 본능적인 능력이라는 뜻이다
침팬지를 아무리 교육시켜도 절대로 인간처럼 문법에 맞는 언어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주장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된 것이다
칼 세이건의 "에필로그"에서는 침팬지들이 수화를 배워 문장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런데 핑커는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조련사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고 언어학자들에게 원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며 쉽게 말하면 자가당착,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수화를 단순히 사물을 흉내내는 판토마임 정도로만 본다면  침팬지의 수화 사용을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핑커에 의하면 수화는 완벽한 문법 체계를 지닌 하나의 언어라고 한다
비근한 예로, 청각장애인에게서 태어난 청각장애아들은 수화를 쉽게 배우는 반면, 나이들어 청각장애인이 된 아이들, 혹은 정상인에게서 태어난 청각장애아들은 마치 이민자들이 외국어 배우는데 힘이 들듯, 자연스럽게 수화 문법을 체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수화를 단순한 손동작 몇 개로 너무 가볍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수화는 상징의 개념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TV 장면이나 책 내용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문법 체계까지 갖추었다고 하니, 침팬지가 수화를 배운다고 하는 건 어쩐지 어불성설로 들린다
실제로 수화를 배운 침팬지의 손동작을 청각장애인들이 받아 적으면 매우 힘들어 하는 반면, 일반인들은 유사한 뜻으로 비슷하게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실 칼 세이건의 글을 읽으면서 침팬지의 수화 능력에 환호했는데 맥이 좀 빠지긴 한다
그렇지만 언어 습득 능력이 인간 고유의 본능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단어를 듣고 상징을 떠올리는 것을 정신언어라고 한다면, 보편적인 규칙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문법이다
저자는 영어의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보편적인 문법 체계를 설명했지만 솔직히 너무 지루하고 이해도 안 됐다
역시 영어 비사용자의 한계인가 싶다
한국어로 예를 들었다면 훨씬 쉽게 이해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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