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 살아가기 함께 행복하게
프란스 드 왈 외 지음, 프란스 랜팅 사진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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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밌게 읽고 있다
함께 실린 사진이 매우 훌륭하다
책값이 아마도 사진 때문에 비싸진 것 같은데 침팬지보다 작은 이 귀여운 친척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실려 있어 충분히 값을 한다
보노보라고 하면, 피그미침팬지로 알고 있어서인지 막연하게 침팬지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20세기 초반의 학자들은 보노보를 체구가 작은 침팬지 쯤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리한 관찰자들이 이 매력적인 동물과 침팬지의 차이점을 기술해 가면서 비로소 둘이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역시 세밀한 관찰과 묘사가 중요하다
침팬지 보다 체구가 작고 특히 두상이 매우 작으며, 목소리 톤이 높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들의 생활상인데 침팬지가 수컷 지배 사회인데 반해 보노보는 암컷들의 연합체라고 한다
그래서 종종 평화로운 사회로 미화되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보노보가 평화라는 개념을 알 리 만무하다
침팬지는 암컷이 수컷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컷에게 예속되어 있고 한 마리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반면 보노보는 암컷과 수컷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러 마리의 암컷들이 서로 연합해서 수컷을 억누르기 때문에 수컷들은 항상 무리의 주변부에 머무른다
특이한 것은 수컷 침팬지들이 형제끼리 연대하여 우두머리 자리를 지키는 반면, 보노보 암컷들은 혈연 관계로 묶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친상간을 막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설명되는데, 암컷은 생식 가능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무리를 찾아 떠나기 때문에 자매들이 한 무리 안에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보노보는 돌봐 줘야 할 어린 시절이 길어서 오랫동안 어미가 자식을 데리고 다닌다
인간과 이 점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수컷의 서열도 엄마의 지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들의 액티브한 성생활일 것이다
침팬지가 일곱 시간 마다 섹스를 하는데 반해, 보노보들은 한 시간 단위로 섹스를 한다고 한다
잠자거나 먹는 시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하루에 수십 번을 한다는 얘기인데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성기의 길이가 길다는 이유로 해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야생동물이 정장제로 팔려 나가는 걸 생각해 보면, 보노보가 조금만 더 일반적인 동물이었던들 아마도 이미 멸종됐지 않았을까 싶다
성기가 부풀어 오른 암컷의 사진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랬다
동물원 관람객들은 심지어 암컷에서 엄청난 cancer가 있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너무 부풀어서 bleeding도 잦고,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고 한다
과연 섹스의 지존 답다
재밌는 건 이들의 섹스 장면이 전혀 야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의 설명대로 긴장 완화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놀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섹스에 사회적 통념을 지나치게 내면화 하고 사는 것 같다
인간의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 토할 것 같고, 성욕이 끓어 오르기는 커녕 굉장한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지는데 똑같은 섹스 장면이 실린 이 책을 볼 때는 오히려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섹스란 누군가의 말처럼 그저 친밀한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여튼 책에 실린 보노보들의 섹스 장면은 아름답고 정겨우며 또 매우 귀엽다
아마도 보노보들의 침팬지 같은 거친 이미지가 아니라 얼굴 표정이 풍부판 종이라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이들의 표정은 정말 풍부하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볼 때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데, 사진 속의 보노보들도 마치 인간의 아기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얼굴 근육 사용이 인간처럼 활발하기 때문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리들의 사촌 보노보는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갖고, 그 윗대에서 인간과 분리되었다
다시 그 윗대로 올라가면 고릴라가 떨어져 나갔고 그 윗쪽에서는 오랑우탄이 갈라져 나갔다
그러니까 확실히 침팬지는 우리와 가장 비슷한 유인원이고 특히 보노보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였던 셈이다
사실 생물학에 관련된 모든 책은 진화를 베이스에 깔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과연 이런 책들을, 이른바 창조론자들은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창조론자들과 논쟁이 붙을 때 진화론을 설명해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당연하게 옳은 얘기이고, 또 창조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어찌나 유치한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웃으면서 논쟁을 포기해 버린다

꼭 덧붙여야 할 말은, 보노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일본인 학자 가노 박사에 관한 얘기다
외국 책에서 일본인 학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확실히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선진국이고 한국이 어깨를 마주하기엔 너무 큰 나라다
학술 분야에서 일본의 놀라운 투자와 발전 상황을 접할 때마다 정말 허걱 하고 놀라게 된다
보노보 연구 역시 교토 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가노 박사는 혼자 자이르의 밀림 지대로 들어가 사탕수수 밭을 경작하면서 경계심 많은 이 동물들을 유인했다
야생 상태의 보노보를 연구하기 위해 먹이를 주는 것은 서양 학자들과 완전히 다른 방법인데 이 방법의 장점은 오랜 시간을 두고 야생 동물 집단을 추적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년 동안 관찰한 바를 학술 논문으로 제출한다고 하니, 과연 일본인답게 끈질기고 철두철미 하다
어쨌든 이 외로운 밀림에서 보노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가노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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