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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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목간 발굴에 관한 이야기라 전시회 도록 같은 느낌으로 빨리 훑어 볼 수 있었다.

돌에 새긴 금석문은 만들기가 힘든 만큼 중요한 정책이나 법령 등이 많았던 반면, 목간은 물품의 꼬리표 같은 실제적인 역할을 담당해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30만 점 이상의 엄청난 목간이 쏟아져 나온 반면 우리나라는 보존상의 문제 때문에 겨우 수백 점에 불과하다고 하니 안타깝다.

중국처럼 쓰고 난 후 목간을 한꺼번에 버리는 폐사지가 발견된다면 훨씬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목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세금 수취와 군역과 요역 징발을 위한 호구 파악에 있는 것 같다.

신라 촌락 문서와 같은 기록들이 목간으로 남아 있어 흥미롭다.

사비 도성을 5부 5항으로 나누어 어디 사는, 무슨 직책을 가진 누구 이런 식의 신분증 같은 목간이 남아 있다.

또 위덕왕이 관상성 전투에서 사망한 아버지 성왕을 기리기 위한 세운 능사지에서 목간이 발견됐는데 다른 절에서 사월 초파일을 맞아 보내온 물품들이 적혀 있다.

자기사와 보현사는 절 명칭이 나온다.

子基寺, 즉 아들을 기리는 절이라는 뜻이라 흥미롭다.

저자는 위덕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 세운 절 이름이 혹 자기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법왕 때 세워진 백마강 너머의 왕흥사의 원래 이름이 자기사였을 수 있다고 추론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흥미로운 가설이다.

이 곳에서 능사로 송염, 즉 소금을 보낸 목간이 발견되었다.

절에서 염전을 운영했다는 간접 증거라고 한다.

오석, 즉 도교에서 선약으로 쓰이는 오석산이라는 목간도 발견되어 백제와 도교의 관련성도 추측하고 있다.

한 두 글자에 불과한 목간을 가지고 다양한 생활상을 추론한다는 점에서 문자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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