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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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약한 역사 분야가 바로 전쟁사,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전이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역시 어렵다.

제목이 "사진으로 보는 2차 대전"이라 좀 쉬울 거라 생각하고 고른 책인데, 생각보다 2차 대전 전투들을 자세히 묘사해서 따라가기가 다소 어려웠다.

거의 흑백 사진이라 사진에 방점이 찍힌 책은 아니고 2차 대전의 각 전투에 대해 성실하게 묘사한 책이라 하겠다.

번역이 약간은 어색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내 배경지식이 부족해 매끄럽게 잘 안 읽혀 한참 걸렸다.

2차 대전사는 다른 책들도 좀더 읽어 봐야 할 듯.


전에는 막연히 2차 대전이라고 하면 히틀러가 전유럽을 장악하고 영국과 프랑스, 미국이 협력하여 파시즘을 몰아낸 전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히틀러는 1차 대전의 악몽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 하던 영국을 이용해 체코 땅을 병합시킨 후 전격적으로 폴란드와 프랑스에 진격해 속도전으로 유럽을 장악해 버렸다.

즉, 병력이나 물자가 아주 풍부해서 압도적인 전력으로 이들을 장악한 게 아니라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됐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고 당연히 독일도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점령해 버린 히틀러는 영국을 무차별 폭격하지만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고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소련을 침공하게 된다.

히틀러는 소련을 중부 유럽처럼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 바로 2차 대전에서 소련의 분전이다.

전에는 막연히 2차 대전은 영국과 미국, 프랑스 같은 자유주의 국가들이 파시즘 국가를 물리친 전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독일과의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도 소련이고 다른 모든 국가들의 사상자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죽은 이들이 바로 러시아인들이었다.

어찌 보면 소련을 움켜 쥔 스탈린의 분전이 놀랍고 왜 종전 후 소련이 주변을 위성국가화 시켰는지 그 영향력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마치 자유주의 진영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졌던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 이외의 지역 전투들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전에는 오히려 소소해 보일 정도로 동부 전선의 피해가 막심했다.


<인상깊은 구절>

51p

그는 폴란드인들이 나중에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획득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단치히와 회랑을 독일에 기꺼이 양보하리라 생각했다. 폴란드 통치자들의 시각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셈이었다. 폴란드 통치자들은 폴란드를 강대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과 소련 두 나라 모두에 대해 독립을 유지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고 둘 중 어느 나라에든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었다. 폴란드인들이 요지부동일 것이라 판명되자, 히틀러는 늘 사용하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군사 행동을 취하겠다고 막연히 위협함으로써 협상을 용이하게 풀어보려 한 것이다.

 이러한 위협이 영국 정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38~1939년의 겨울 동안 그들은 점차로 독일이 서유럽에서, 네덜란드에 대해, 프랑스에 대해, 어쩌면 심지어 영국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되엇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은 프랑스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폴란드는 영국인들에게도 중요해졌다. 1938년 12월까지도 그들은 폴란드가 독일의 위성국이 되리라는 것을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강화되어야 한다면 동부에 제2의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폴란드가 필요했다. 폴란드가 이탈한다면 프랑스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었다. 

 영국의 폴란드 보장으로 유럽에서 전쟁 발발이 목전에 다가왔다. 히틀러는 억제되기는커녕 흥분했다. ... 그는 서유럽의 두 나라가 지난해 체코슬로바키아에 했던 것처럼 폴란드에도 양여를 강요할 것을 확신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기다림이 헛되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충분히 그럴 의향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히틀러를 회유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실제로 이번에도 그가 주장하는 바가 정당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체코 위기를 통해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않으려면 하나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폴란드인들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다. 분명히 폴란드인들은 스스로의 힘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했다. 이보다는 좀 더 관대하게 봐줄 수 있는 실수인데, 또한 폴란드인들은 서유럽 국가들의 힘을 과대평가했다. 그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더는 1918년의 기세등등한 전승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러한 폴란드의 망상을 조장했다. 그들은,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자신들이 폴란드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식했다. 그들은 폴란드의 완강함에 당황했다. 그러나 강대국으로서의 모든 명성을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 한 약속을 부인해서는 안 되었다

333p

그는 두 명의 독립적인 공산주의 지도자 티토와 마오쩌뚱을 다룰 때 보여주었듯이 결코 그들의 성공을 원하지 않았고 종종 방해하기까지 했다. 스탈린은 다른 모든 일을 생각지 않고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만 마음을 쏟았고, 이는 우리가 러시아에서 2천만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루스벨트는 아마도 자유 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생각했을 것이고, 처칠은 대영제국을 회복시킬 생각을 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오로지 독일의 패배만을 생각했다.

337p

테헤란 회의는 세계사에서 하나의 이정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그렇게도 협력을 이루지 못하던 두 세계적 강대국이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삼대 강국은 독일을 패배시킬 때까지 단결하기로 약속했다. 세 나라 모두가 지킨 약속이었다. 강대국들이 연합해 히틀러에게 대항하면 그의 운명이 끝장난다는 사실은 언제나 명백했다. 이제 그들이 그렇게 했고,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졌다.

374p

티토는 베오그라드에 자신의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했다. 나중에 그가 언급한 대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파이프 담배를 물고 러시아 항공기를 타고 돌아와서 조국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전쟁 기간 내내 자신의 나라를 떠나지 않았던 유일한 공산 지도자였다.

384p

바로 그날 아침 독일인들이 공세를 시작했고 연합국의 전선 전체가 붕괴 위기에 몰린 것 같았다. 12월의 이 공세는 히틀러의 전략적 영감이 마지막으로 한번 발휘된 것이었다. 신체적으로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오로지 약의 복용량을 늘려감으로써 버텼다. 남아 있는 전부는 굴하지 않는 의지뿐이었다. 침울한 상태로 그를 대면하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사기가 높아져서 나왔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천재성으로 물질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대담한 수완가였다.

 장성들이 공세를 취하는 것은 독일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히틀러에게 말했다. 히틀러는 "방어태세로 싸우면 오로지 결정을 늦출 수 있을 뿐이고 전체적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소."

415p

"폭탄은 단지 사용되어야만 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우리가 그 엄청난 비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일어나게 될 대중의 비난을 생각해 보라. 폭탄이 완성되어 투하되었을 때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정말로 크게 안도했다."

 아무도 핵폭발에 따른 방사능 낙진에 대해 숙고해보지 못했다. 핵폭탄은 "그냥 또 다른 종류의 폭탄"이었다. 미국인들은 그들만의 만족감을 느끼며 일본에 대해 핵폭탄을 사용했다. 그들은 이탈리아나 독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격렬한 도덕적 분개나 보복의 열망이 없었다. 그러나 진주만의 굴욕을 뒤에 두고 있는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가차 없이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430p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즉시 전 세계적인 평화가 시작되지 않은 데 대해 낙담해왔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평화는 전쟁의 목적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나치의 압제로부터, 그리고 좀 더 작은 부분이지만 일본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아무리 큰 희생을 치렀다 할지라도 성공을 거두었다. 누구라도 현재의 상황을 생각할 때 어느 곳에 있는 사람들이건 나치 독일과 일본이 승리했을 때보다는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게 더 풍요롭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469p

히틀러는 대규모 전쟁을 계획했다기보다는 무력사용의 위협과 소규모 전쟁을 이용해 독일이 힘과 지위를 키워나가려 했고 주로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기회를 포착해 이를 시행했다.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 주데텐 합병, 폴란드 침공에 이르는 길까지 전쟁전의 대외적 행동에 관해 서술한 이전 책에 이어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및 서유럽 정복이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행동이라기보다는 신속한 공격과 승리로 힘과 지위를 강화한 행동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러시아 침공에 대해서는 히틀러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 정복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의 실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영국이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해 타협하러 나오게 만든다는, 상황에 따른 대응일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일본과 이탈리아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영국과 미국 혹은 심지어 중국과도 전쟁하기를 원치 않았다. 무솔리니는 아비시니아나 그리스보다 강한 어느 국가와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추축국 국가들은 그들에게 달갑지 않은 세계대전이 다가올 때까지 일련의 즉흥적인 소규모 전쟁을 하며 조심스러게 앞으로 나아갔다"라며 같은 해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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