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클래식 클라우드 26
이길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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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팟캐스트에서 연재할 때부터 예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컨셉이 신선해 흥미롭게 들었는데, 막상 책으로 나오니 편집이나 읽기는 좋은 반면, 깊이 면에서는 늘 아쉽다.

분량의 한계일까?

아마도 본격적인 교양서가 아니라 방송용으로 대중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수준에 포커스를 맞춘 탓이겠지만 책보다는 팟캐스트에서 김태훈과 게스트 이야기 듣는 게 더 재밌는 듯하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예술가가 아니라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다.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면서 그의 생애와 주장을 돌아보는 컨셉이다.

도판이나 편집이 아주 예쁘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라 보기는 좋다.

내용도 이해하기 쉽지만 깊이 면에서는 아무대로 아쉽다.


루터는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을 강조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럽 사회를 장악해 온 가톨릭의 사제 계급이 아닌, 성경 읽기를 통한 개별적인 신과의 대면을 통해 오직 신의 자비와 은총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만인사제주의를 주장했다.

성경을 읽으려면 문자 해독이 가능해야 하므로 루터는 공교육을 강조했다.

당연히 그리스어나 히브리 원전이 아닌 독일어 번역, 그것도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독일어 문어체 확립에 노력했고 때마친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덕분에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변화에 주목한다.

앞세대의 위크클리프나 얀 후스 등이 참신앙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다가 화형대의 불꽃으로 사라진 반면 루터는 인쇄술의 발달이라는 시대의 변화를 잘 이용해 유럽 세계를 뒤흔든 주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전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이 면벌부 판매로 변질되면서 로마의 착취에 대항하고자 했던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지원도 큰 방어막이 됐다.

보름스 회의에서 루터는 제국 추방령을 당하는데, 그가 살해될 것을 걱정한 프리드리히 3세는 루터를 납치해 바르트베르크 성에 안전하게 데려다 놓은 후, 그 10개월 동안 신약성서 번역이 이루어진다.

이런 위정자들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도 얀 후스처럼 화형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루터는 농민 반란에 단호하게 반대했고 수많은 이들이 잔인하게 진압됐다.

루터는 한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개혁가라기 보다는, 페스트와 전쟁의 시대에 어떻게 죽음을 극복하고 신의 구원을 받을 것인가, 신과의 개인적인 관계 설정에 몰두한 신실한 종교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저자는 루터를 개인주의 시대인 근대를 연 최후의 중세인이라고 표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변되는 스콜라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이성으로서 세상을 보는 자연신학을 추구했던 반면, 루터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신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영적 체험과 계시를 통해서만 비로소 구원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신비주의를 주장했다.

저자는 출세의 도구로 삼았던 유학을 남송 때 철학적 관념론으로 승화시킨 주희와 루터를 비교한다.

약간 뜬금없는 것 같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실체보다는 관념론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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