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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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동화 같은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이름에 끌려 읽게 됐는데 짧은 글이라 30분만에 다 읽어 버린 듯하다.

일러스트레이션과 아버지에 대한 저자의 회상이 잘 어우러져 약간 먹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맥없이 끝나버린 느낌이라 아쉽기도 하다.

제목은 고양이를 버리다인데, 누구와 함께 버렸는지, 바로 그 주인공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좋아하는 작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뜻밖에도 저자는 외아들이었고 본인도 자녀가 없는 걸로 아는데 여기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다.

저자의 아버지는 2차 대전 때 학생의 신분임에도 행정상의 오류로 징집되어 버마 전선으로 끌려 간다.

저자는 잠시 아버지가 난징 대학살에 참여한 걸로 오해해 그 행적을 찾는데 주저했으나 천만다행으로 아니었다는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 보면 그 부대에 있었던 일본인 징집병들도 정말로 운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제국주의 군인이라고 하면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기 힘든 상대지만, 그럼에도 전체가 아닌 그 개인을 들여다 보면 역시 힘든 시대를 살다 간 연약한 인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느닷없이 전쟁으로 끌려가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천운으로 돌아와 90살까지 장수했지만 평생 전쟁에 대한 상처를 마음 속에 안고 살았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도 내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는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1980년도에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5.18을 겪었고 그 일로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 복귀를 못했다.

지금은 민주화 유공자가 되어 젊은 시절 상처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받고 있지만 아빠의 젊은 시절이 어떻게 사라져 버렸나 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 보면 왜 하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을까, 이런 것도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담백한 사람이라 한번도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같은 걸 얘기해 본 적도 없고 시대를 원망하거나 누구 탓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나는 인간이 거스르기 힘든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해 가는지에 대해 아빠를 보면서 가끔 생각해 본다.

자식이 유명해지면 부모의 삶도 한 편의 의미있는 글이 될 수 있을텐데 하루키의 아버지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아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걸 보고 기뻤을까?

20여 년 동안이나 아버지와 단절되어 있다가 임종 직전에서야 화해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아쉽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어색하고 단절되어 있는 게 자연스러운가?

나는 아빠와 성향이나 관심사가 비슷해 지금도 매일 같이 통화하고 아주 가까운 사이인 반면,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와 1년에 한 두번 만나는 게 전부다.

너무 멋진 작가의 좀더 깊은 속얘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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