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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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한 학자의 글이 아니라서 그런지 깊이있는 분석 보다는 에피소드들의 나열이 많아 지루하다.

주제는 신선하고 좋은데 내용은 잡다한 역사적 일화들 소개에 그친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들

1) 오늘날 중국인의 육류 소비 절반 이상은 돼지고기인데 이 역사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 양고기 등을 더 높게 쳤으나 명나라 때 농민 출신 황제 주원장의 등극 후 서민적인 이미지의 돼지고기 인식이 바뀌게 되고, 특히 수렵인이었던 만주족은 돼지고기를 매우 중시했다.

몽골인이 양을 치는 유목민인 반면, 숲이 터전인 만주족은 돼지를 주식으로 삼았다고 한다.

앞서 읽는 <송나라 식탁 기행>에서도 남송은 양을 칠 만한 목초지가 부족한 반면 북방의 금나라는 양고기가 흔했다고 나온다.

게르만인, 특히 독일에서 소시지가 유행인 이유도 바로 울창한 숲에 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돼지치기가 가장 편했던 것이다.

쇠고기 소비는 6%에 불과하고 오리 등 가금류가 25%를 차지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2) 보통 두부의 발명을 회남왕 유안 시대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민족들이 몰려온 6세기의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송나라 때 널리 퍼졌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 두부는 유목민들이 양젖이나 소젖을 발효시켜 치즈나 버터로 만들자 유제품을 얻기 힘든 한족은 그 대용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특이하다.

아무리 봐도 풍미가 있는 치즈와 거의 무맛에 가까운 두부는 비슷하지가 않는데 유래가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다.

3) 저자는 영락제 때 정화 원정의 목적을 단순한 조공 무역의 확대가 아닌 경제적 이유였다고 본다.

따로 근거를 밝히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

후추 등 향신료를 수입해 무리한 궁궐 공사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으려 했다는 데 납득이 안 된다.

정말 경제적 동기가 있었다면 서양처럼 적극적으로 대항해 시대가 열렸을 것이다.

국가가 무역을 독점하려 들자 민간 상인들과 결탁한 관료들이 반발해서 영락제 사후 중지됐다고 하는데 폐쇄적인 해금 정책을 고수한 명나라의 기본 정치 체제를 생각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조 히로시가 쓴 <영락제>에 나온 바대로, 조공 국가를 넓히고 화이질서를 과시하기 위한 매우 비경제적인 활동이었기 때문에 영락제 사후 비용 문제로 중지됐다는 게 맞는 것 같다.

4) 중국이 명나라 때부터 회를 먹지 않는 이유로 흑사병에 대한 공포를 든 점은 주목할 만하다.

14세기에 유럽이 흑사병으로 1/3이 사망한 것에 비해 중국사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산발적으로 일어나 눈에 띄지 않을 뿐 실제로는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고 한다.

김호동 교수의 책에서도 원나라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흑사병 가능성을 든 적이 있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오류>

255p

초대 황제였던 사마염이 죽자 내분이 일어났고 어린 혜제가 뒤를 이었는데

->혜제는 32세의 나이로 즉위한다. 혜제가 어려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지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외척 세력이 득세했다.

301년 혜제의 당숙뻘인 조왕 사마륜이 군사를 일으켜

-> 조왕 사마륜은 사마의의 아들로 혜제의 아버지 사마염의 당숙이다. 혜제에게는 할아버지 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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