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럽 나의 편력 - 젊은 날 내 영혼의 거장들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은 별 4개 주는 책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다.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지식과 생각할 꺼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쁘고 행복하다.

책을 읽은 그 순간만큼은 세상 만사를 다 잊고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독서를 포함한 지적 활동, 혹은 문화나 예술, 교양 등도 종교나 윤리도덕, 거창한 대의명분, 시대정신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유의미한 방향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읽은 이병한씨의 <유라시아 견문>에서는 동유럽 사상가들이 공산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종교 즉 기독교를 내세웠다.

폴란드의 천주교나 러시아의 정교 등은 마치 우리의 유교 전통과도 같은 오래된 연원을 가진 민족 정신 비슷한 것이리라.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어찌 보면 외세와도 비슷한 느낌이니 종교가 주는 의미가 서구 사회와 같을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종교의 광신과 도그마, 특히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이라 불리는 미국식 성경 무오류설 종파들이 먼저 떠올라 진정으로 21세기에 종교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문화사가인 부르크하르트를 통해 국가, 종교, 문화 이 세 가지의 조화를 권한다.

국가라고 하면 애국심, 내셔널리즘,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 내지 친일 청산 같은 걸 들 수 있겠고 종교는 이슬람 사회와 앞서 말한 공산주의 몰락 후의 동구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는?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는 러시아 경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과연 문화와 예술, 그리고 나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교양은 이 급변하는 시대의 방향키가 될 수 있을까?


책이 참 예쁘다.

노란색 표지가 전혀 촌스럽지 않고 판형도 읽기 딱 좋고, 안의 사진들도 색감이 참 좋다.

한길사에서 책을 참 잘 만들었다.

이광주씨의 오래된 저작 "유럽사회-풍속산책"에서도 18세기 계몽주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도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던 유럽 지성인들에 대해 알게 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종교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당대의 최고 지성이었던 에라스뮈스가 그것에 동조하지 않고 방관자 자세를 취했다는 점을 비판한 책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루터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면서 맹목적이고 광기어린 집념을 가진 신앙인이었고, 에라스뮈스는 궁극적으로 관찰자의 역할을 자임한 지성인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셈이다.

어려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 참 인간이라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을 앞에 내세운 사람들의 행태를 지켜 보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거에 때려부수고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을 구속하고 재단하는 혁명이 아닌,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휴머니즘적인 한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류>

72p

그들 가운데는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숙부로서 저명한 역사가인 오토 4세, 훗날 교황이 되는 두 명의 인물, 추기경이 된 몇몇 제자도 있었다.

-> 아벨라르의 제자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숙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벨라르 자체가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신학자라 정보가 없어 찾느라고 혼났다. 아벨라르 제자 검색하면 죄다 엘로이즈와의 연애 얘기만 나온다.

아벨라르의 제자는 오토 4세가 아니라 중세 역사가인 오토 폰 프라이징이고, 그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아니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숙부이다. 프리드리히 1세의 아버지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오토 폰 라이징은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가 같은 이부형제이다.

431p

디트리히의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 위키백과에 따르면 프로이센의 장교로 러시아에서 전사한 이는 친부가 아니라 계부로 정식 입양하지 않아 성도 바뀌지 않았다. 친부는 베를린 경찰이었고 6세 때 사망했다.

434p

그리고 히틀러와 그녀의 싸움이, 생애를 건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29세였다.

-> 히틀러의 연설을 처음 들은 1933년은 그녀가 1901년생이므로 29세가 아니라 32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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