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박상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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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얼핏 보고 단순히 선비와 일본의 사무아리를 비교해서 쓴 뻔한 책인 줄 알았다.

읽어보니 전공한 학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내공이 상당하다.

재일교포 3세라는 저자의 약력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객관적이길 기대하는 탓일까?

제목 그대로 조선의 선비, 즉 일본에 갔던 조선 통신사들이 무사들이 다스리는 일본 사회의 구조를 관찰하고 쓴 문집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 지식인들에게 일본이 어떻게 비춰졌는지에 관한 책이다.

조선으로서는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전쟁을 치룬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일본이 재침할 것인지 여부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고, 전쟁을 일으킨 토요토미와는 다른 토쿠가와 막부가 집권했기 때문에 과연 평화 정책을 유지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희화화 되는 것처럼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당파 싸움에 휩싸여 각기 다른 보고를 했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조선의 통신사들은 꽤 깊이 일본 사회를 분석하고 나름의 대책과 전망을 내놓았다.

저술 간행이 활발했었는지, 일본에 다녀온 적이 없는 이덕무, 정약용, 홍대용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도 통신사들의 책을 읽고 일본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그들은 조선을 침략한 토요토미 정권과 토쿠카와는 전혀 다른 정권으로 인식하고 유학을 받아들여 동아시아 유교적 예교 체제에 맞춰 평화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즉 일본의 유교화가 얼만큼 진행되느냐가 조선 지식인들에게는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척도로 인식됐던 것이다.

맨 마지막에 나온 비판처럼, 당시 조선인들로서는 한중일 세 나라를 넘어서는 국제적 인식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막연히 일본이 중화문명체제에 편입되면 군자화 되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서양 세력의 침입이 없는 전통사회였다면 우리 조상들이 바램대로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7세기는 서양의 대항해 시대가 이미 시작됐고 특히 일본은 앞장서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조선 선비들의 바램과는 달리 일본은 유교화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서구화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과는 조선왕조의 멸망이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라는 책에서도 일본의 유학 열풍이 갖는 근대적 의미를 읽은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주자학을 추구하면서 화이론과 중화 문명을 떠받드는 조선 선비들과는 달리, 일본 유학자들, 특히 오규 소라이는 주자학에 매몰된 조선인을 매섭게 비판했다.

이미 주자학은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더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었으니 조선의 좁은 시선이 안타깝다.

실학자들은 일본의 기술 발전에 놀라워하며 이용후생론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들 역시 재야의 지식인에 불과하고 정권을 잡은 집권층에게 전혀 의지가 없었던 탓에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만다.

그러고 보면 집권 엘리트층의 국가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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