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살인사건 -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
김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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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읽게 된 책이다.

제목부터 흥미롭고 저자가 19세기에 남아있는 검시 기록들을 꼼꼼하게 분석해 읽기 쉽게 풀어놓았다.

네이버에 연재된 글이라 그런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느낌이다.

더 오래 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벌어진 살인사건들이다.

대한제국 시기면 근대 국가 같은데 사건 기록들을 보면 여전히 전통사회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든다.

상민들은 양반들의 횡포에 시달렸고 이들이 서로 힘을 합쳐 자활조직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또 주변인들에게는 새로운 폭력 집단이 된다.

사회에서 억압받는 남자들은 가정 내에서 가족인 여성을 폭행하고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를 학대한다.

단편적인 사건들이지만 전근대 사회는 사적 폭력이 상당히 일상화 됐다는 느낌이 든다.

말단 지방에까지 행정관을 파견하는 중앙집권국가였으나 시대적 한계상 세세하게 주민들의 일상을 법으로만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마을 자치에 맡겼던 것 같기도 하다.

지방관이 지방민과 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기를 짧게 했던 조선왕조의 고충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사적 복수의 허용도 전근대 사회의 특징 같다.

마치 프랑스에서 국왕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결투를 통해 시비를 가렸던 것처럼 조선 역시 성리학적 명분론에 근거하여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이를 향해 사적 복수를 감행하고 이것이 또 법에 저촉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찬양하는 분위기였다는 게 신기하다.

오늘날과 매우 다른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피해를 입힌 사람을, 심지어 살인자라 할지라도 사적으로는 절대 폭력을 가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권의식이나 개인의 존엄성 같은 가치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발달해 온 것 같다.

처음부터 당연하게 있었던 게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가 쟁취한 진보적 가치관들인 것이다.

확실히 전근대인들은 현대인과는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이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당대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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