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후궁 비사
후단 지음, 이성희 옮김 / 홀리데이북스(Holiday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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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위주의 책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중국에서 출간된 책들이 정말 많이 번역되는 것 같다.

양이 많아져서인가, 질적으로도 책의 수준이 올라가는 듯해서 이제는 안심하고 읽어도 될 듯 하다.

저자 약력만 보고 박영규씨 같은 대중 작가인가 싶어 책 내용에 대해 약간 우려했는데 서문에 공약한 대로 TV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자극적인 에피소드는 일체 배제하고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의 식견을 첨부하여 논평하는 괜찮은 역사서다.

중국사는 정치적으로만 조금 알고 있을 뿐이라서, 황실의 속사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됐고 만족스럽다.

황제의 친인척에 대한 저자의 책도 곧 번역될 예정이라고 하니 같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의 주인공은 뭐니뭐니 해도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다.

일개 농민에서 황제가 된 정말 대단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생산력도 남달라서 수많은 여인들을 취하고 자식들도 40여 명에 이른다.

원말에 군문에서 유행한 독특한 풍습이 바로 의자녀 제도이다.

전에도 주원장이 곽자흥의 양녀의 남편이었다는 게 신기했었다.

곽자흥이 자녀가 없었나 싶었는데 심지어 친딸은 후궁으로 봉해지고 친아들 둘도 모두 후에 봉해진다.

자녀가 없어서 양녀를 들이는 게 아니라 의사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보다 친밀하고 충성스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마치 로마 제정 초기에 양자 제도처럼 말이다.

주원장 역시 자신의 부하나 조카들처럼 가까운 이들에게 주씨 성을 내려 양자로 삼아 친위부대처럼 활용한다.

이들은 주원장이 중원을 정벌할 때 가장 먼저 앞장선 충신들이었고 대부분은 전장에서 사라졌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분봉되기도 한다.

물론 주원장의 잔학하고 냉정한 성품으로 대부분은 끝이 좋지는 못했다.

난세를 평정하고 왕위에 오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품성이 냉정하고 권력의지가 매우 강해 친인척의 굴레에 속박당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선 건국에 앞장선 태종 이방원도 이복 형제들을 죽이고 훗날 친인척을 전부 죽여버린 것처럼 주원장도 가족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간다 싶으면 바로 제거해 버렸다.

이런 잔혹한 성품은 공의적인 측면에서는 외척에게 좌지우지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으나 사적으로 보면 얼마나 냉혹한가.

가족도 단칼에 정리할 정도이니 아무 상관없는 신하들쯤은 수만명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로 처결해 버렸을 것이다.


너무나도 잔인한 순장 풍습에 대해 길게 서술이 됐다.

명 황실에서도 장례 때 인형을 묻는 것마저 비인간적인 행태라고 비판한 유교적 관례를 의식한 탓인지 두리뭉실하게 실록에 기록했으나, 한확의 여동생인 여비 한씨의 유모 김흑이 귀국해 조선왕조실록에 순장 당시가 자세히 기록됐다.

사실 공녀 제도부터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광활한 중국 땅에 미녀들이 널려 있을 것이고 다들 황실에 들어와 총애를 받고 싶어할텐데 왜 굳이 말도 안 통하는 먼 조선 땅에서 궁녀를 보내라고 닦달을 했을까?

단순한 이국적 취향인가, 아니면 복속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인가?

물자도 아닌 외국 여자가 꼭 그렇게 필요했던 것일까?

전쟁 포로도 아닌데 굳이 양가집 규수들을 선발해 후궁으로 앉히는 제도의 본의를 모르겠다.

이 제도는 선덕제까지 있었던 것 같고 정통제 즉위부터는 없어진 듯하다.

정통제는 순장 제도도 없애버린다.

홍무제 사망 당시 40여 명에 달하는 비빈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고, 뒤를 이은 영락제와 홍희제, 선덕제 모두 모시던 비빈들이 순장당했다.

자식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황태후가 지목하면 죽어야 했던 모양이다.

황태후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같던 정적을 남편 사후 제거하는 방법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인종의 정비였던 장황후는 자식을 셋이나 낳고 지위가 귀비에 이른 곽씨도 순장시킨다.

주원장은 무려 69세에 막내딸을 낳는데, 3년 후 죽으면서 이 불쌍한 아기의 어머니도 같이 순장된다.

보통 아이가 어리면 보육을 위해서라도 살려두는데 얼마나 끔찍한 풍습인지 짐작이 된다.


책에서 가장 길게 서술한 주제는 영락제가 과연 마황후의 적자인가 하는 것이다.

황위를 찬탈하고 독재 권력을 휘두른 황제에 대한 민가의 반발심 탓인가?

상식적으로는 그냥 야사에 불과할 것 같은데 왜 이 멀쩡한 황제가 서자 소문에 휘말렸는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영락제가 마황후 소생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어떤 책에서는 고려 여인의 소생이라고도 하지만, 또 다른 책에서는 이런 건 다 야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내 생각에도 결정적인 증거가 있지 않는 이상 정사의 기록을 의심하는 것은 음모론에 불과한 것 같다.

그리고 이미 황제위에 올라 역대 어느 황제보다도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는데 적통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현대인들에게도 적통이 좋다는 선호 사상이 있는 것인가?


아들에 대한 황실의 집착도 안타깝다.

서양처럼 여성도 가문의 계승권이 있었더라면 불행한 여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을까?

혹은 청나라처럼 황위 계승에 적서 차별이 없었다면 궁중의 암투는 줄어들었을까?

고대가 남성 위주의 사회이긴 하지만 반드시 아들만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은 정상적인 가정을 얼마나 심하게 파괴하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정말 여성 상위 시대라고 할 만큼 역차별 논란이 심한 걸 보면 격세지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만인의 어머니인 황후 자리마저도 단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명나라 황후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랍다.


<오류>

40p

절대 다른 어염집의 딸과 아낙네를 함부로 빼앗아 본 적이 없다

-> 어염집이 아니라 여염집이다.

47p

어떻게 했길래 예쁜 아내 한 명을 공짜로 얻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시동생 두 명까지 얻을 수 있었을까?

-> 주원장이 곽자흥의 양녀 마황후와 결혼하고 의동생인 곽흥, 곽영이 그를 따랐다는 문장이니, 시동생이 아니라 처남으로 번역해야 한다.

49p

사실 주원장은 곽녕비의 얼굴을 봐서라도 시동생에게 큰 자리를 주고 싶어 했다.

-> 곽녕비의 남동생이므로 시동생이 아니라 처남이다.

297p

선덕 연간이 되자 강제로 중국 조정에 끌려왔던 조선 국적의 집찬비, 창가비들은 하나 둘 김흑을 찾아와 자신도 김흑과 함께 귀국해 부모님을 만날 수 있도록 태후에게 말씀을 드려줄 것을 부탁했다.

-> 선덕 연간이 아니라 영종이 즉위한 이후이므로 정통 연간이다.

약 10여 명이 죽었는데, 이는 순종이 내린 유지였을까?

-> 순종이 아니라 선종이다.

362p

서달의 차녀가 황제의 큰 매형인 주체에게 점 찍혔는데, 당시 주체는 이미 서달의 장녀와 결혼을 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 황제인 주체에게, 혹은 언니의 남편인 주체에게 등으로 문맥을 바꿔야 한다.

378p

주원장의 형부 이정에서 그 아들 이문충에게 전해지고

-> 이정은 주원장의 둘째 누나 남편이므로 형부가 아니라 매형으로 번역해야 한다.

383p

직접 소장을 처리하고 판결을 내린다면 모후가 조정의 조회에 참가하고 수렴첨정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 장태후는 영종의 할머니이므로 모후가 아니라 조모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녀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황제의 외삼촌 둘이 한꺼번에, 그것도 아주 철저히 공직에서 떠날 것을 주문했다.

->황제인 영종의 외숙이 아니라 진외종조부들이다. 즉, 이들은 영종의 아버지인 선종의 외숙들이다.

419p

헌종은 아버지 선종의 재능을 물려받은 단청의 명수였으며

-> 헌종의 아버지는 영종이고, 선종은 할아버지이다.

444p

만귀비는 자신의 본가 친척이자, 첩실 관계 제부의 누나가 아닌가?

-> 첩의 언니의 남편이므로 제부가 아니라 형부의 누나라고 바꿔야 한다.

488p

과거는 황제의 어린 외삼촌이었지만, 지금은 나라의 외숙부인 국구가 되었고 황제는 그들 둘만 보면 꼬박꼬박 외삼촌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 과거는 황제의 어린 '처남'이라고 번역해야 문맥에 맞다.

639p

장황후의 명예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자청이 궁으로 진격할 때

-> 이자청이 아니라 이자성이다.

667p

효애철황후 장씨(1620-1664년 사망)

-> 1664년이 아니라 1644년에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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