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 역사학자 4인의 문명 비교 탐사기
박한제 외 지음 / 사계절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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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재독하게 됐다.

2012년도에 쓴 리뷰가 있는 걸 보니 벌써 8년이 지났고 거의 기억이 안 난다.

한국일보에 답사기 식으로 네 명의 전공이 다른 분야 교수들이 주제별로 짧은 글을 쓰는 방식이 독특하다.

대표 저자가 서문에 밝힌대로 네 사람의 의견이나 관점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아 신선하면서도 통일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특히 서양사를 전공한 최갑수 교수의 유럽 상대주의 관점은 관념적이고 당위적인 느낌이라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서양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거기에 대항하는 동양 사관을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랄까?

몽골의 초원에 아무렇게 서 있는 톤육쿡 비석을 보고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프랑스의 유적지에 루이 9세의 십자군 출정 경로가 상세히 써있는 안내판을 보니 국가의 억압이 느껴져 불편했다는 식의 기술에 거부감이 들었다.

역사적 유적은 후손들이 가꾸고 의미 부여를 하고 열심히 알려야 존재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저자는 또 유럽이 대항해에 나설 수 있었던 까닭은 단순히 항해술이 발달하고 모험심이 커서가 아니라 부족한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어제 읽은 박지향 교수의 책에 의하면 항해술이 발달하고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되야 비로소 해양 진출이 가능한 것이고, 또 사회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분위기인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과학혁명과 시민사회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자는 간과하는 것 같다.

동양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은 물자가 풍부해서 전통 사회에 만족했고 서양이 자기들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무역을 시작한 것인가?

너무 도식적인 설명이라 공감이 어려웠다.

다만 왜 서양이 근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느냐의 원인으로 만성적인 춘추전국 시대 상태로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에는 공감이 간다.

중국이 거대한 정치체를 너무 일찍 이룬 것은 지나친 안정성으로 자극이 적어 성장의 기회를 놓친 것인가?

이 책에서는 팍스 몽골리카를 굉장히 강조하는데 150여 년 만에 사라진 것은 그만큼 체제의 안정성이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의 정화 원정이 서양의 대항해와는 달리 단순히 조공국을 늘리고 중화주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비경제적 목적이었다는 박한제 교수의 분석에 동의한다.

그래서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시베리아 유형지에 관한 책을 쓴 한정숙 교수의 러시아와 몽골 관련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러시아는 유럽에 속하면서도 우랄 산맥 너머로 동진하면서 시베리아를 영토에 넣고 몽골 타타르의 압제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동양 문화와 동양식 전제정을 함께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 속의 동양 느낌이 남아있는 듯하고 표트르 1세의 개혁으로 친서구화 정책이 강해졌지만 근대정신 보다는 기술 쪽에 중점을 둔 실용적 변화였으므로 여전히 서양과는 구별되는 역사를 가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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