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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ㅣ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평점 :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읽기 힘들까 걱정했는데 최명길의 일대기를 그린 일종의 이야기책이라 하루만에 금방 다 읽을 수 있었다.
평전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한 것 같다.
너무 세세하게 주인공의 일대기를 사료에 맞춰 기술하고 또 주인공의 관점에서만 당시 정세를 판단하기 때문인지 냉정한 비판이 결여되어 찬사 일색이 되고 마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이 재밌으면서도 김정희가 동아시아 최고의 예인이 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전작 <병자호란>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최명길의 일생을 평가할 때 병자호란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일텐데, 그래서 약간은 지루했다.
얼마 전에 읽은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는 최명길을 비롯한 조선 측의 주화 노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조선을 굴복시키러 온 청 태종이 급하게 강화를 맺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사정 곧 천연두의 위협을 중요하게 언급해서 대조가 된다.
구범진 교수는 저자가 인용한 나만갑 등의 책이 당시 전쟁 상황을 정확히 기록했다기 보다 과장과 전해 들은 말이 많다고 평가절하했는데 아무래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낀 점은 명분론은 한국인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 심성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패권국에 둘러싸인 오늘날의 한반도 사정을 걱정하면서 최명길처럼 현실적인 외교적 판단을 촉구했으나 여전히 명분론이 우세한 듯해서 안타깝다.
역사책에서 대명의리론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조선 사대부들은 마치 명나라를 우리와 같은 한 나라로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는 점이다.
책에도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신들의 당시 발언들이 많이 등장한다.
명나라는 부모의 나라이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줬으니, 지금 오랑캐의 침략에 결사항전 하여 안 되면 모두 옥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 과연 자신들의 옥쇄까지도 염두에 둔 주장이었을까?
삼학사들이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당하긴 했지만 그 외 몇이나 죽었나 모르겠다.
기개로 봐서는 인조가 출성한 이후 전부 자결을 하던지 아니면 명나라로 망명해서 청과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인물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김상헌마저 위선적으로 자결하는 제스처만 취한 후 의리를 지키지 못한 군주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빠져 나간다.
물론 김상헌을 비롯한 안동 김문이 노론의 중심축이 되는 과정은 단순히 비아냥 거릴 수준이 아니라 당대의 성리학 관념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조선 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지 다른 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최명길의 후손은 소론이 되어 그 손자가 숙종 때 영의정까지 역임했으나 결국 주화파라는 비난을 받고 김상헌처럼 받들어지지 못했다.
그 역시 주자학을 익히며 대명의리론을 온 몸으로 받드는 성리학자였음에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제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화합하고 협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항복하는 국서를 찢기만 하면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되니 붙이는 굴욕적이면서도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약한 나라가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맞다.
아마도 당시 조선인들로서는 청이 금나라처럼 일시적으로 흥기하다가 곧 망하리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 후 중국 전역을 통일할 뿐더러 중앙 아시아와 티벳까지 점령해 최고의 판도를 만들고 세계 최고의 문화 강대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너무 강력한 상대를 만난 게 불행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