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통해 본 양반들의 일상세계 - 17세기 <매원일기>를 중심으로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11
정정남 외 지음 / 새물결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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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남 지방의 사족인 김광계라는 인물이 28년간 쓴 <매원일기>를 바탕으로 당시 향촌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거대 정치 담론 말고 실제로 당시를 살아간 일반인들의 삶은 어땠는지 가공하지 않은 날자료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16세기까지는 남귀여가혼의 풍속으로 혼인을 하면 처가 근처로 이사하였고 처가로부터 재산도 많이 물려받고 제사도 윤회봉사로 돌아가면서 지냈다.

집 구조도 부부가 안방에서 거주하여 사랑방을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들은 손님을 접대하고 개인 독서처를 갖기 위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들어 부부가 안채와 사랑채에서 따로 거주하게 되어 그 공간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17세기는 주자학이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가부장적 사회로 변화했고 18세기에 완벽하게 통제됐다.

조선이라는 왕조의 입장에서는 향촌까지 성리학 일변도의 통제된 사회가 되어 안정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근대 사회로 변모하지 못한 원인이 된 듯하다.

반정 이후 서인 세력, 19세기에는 완전히 세도정치로 변하면서 지방 사족들은 더더욱 중앙 관계로 진출하지 못한 대신, 향촌 사회에서 문중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갔다.

제사는 일종의 문중 단합 의식인 것 같기도 하다.

종가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향촌에서 재지 사족으로 인정받으면서 관에도 대항하고 서원을 중심으로 공론을 형성해 자신들의 권리를 챙겼다.

당시가 병자호란 때라 이 책의 주인공 김광계는 의병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의병으로 차출되어 전쟁에 나간 것은 노비들이었고 양반들은 군량미를 댔다고 한다.

양반이라고 하면 상민들을 억압하는 모습만 상상하기 쉬운데, 이들도 관으로부터 핍박받고 심지어 관찰사를 모욕했다고 형신을 받다가 도산서원의 원장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지방 사회는 중앙 권력에 의해 통제됐던 것 같다.

그래도 공동으로 대응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혼맥과 학맥을 중심으로 외연을 넓히고 공론을 일으키는데 그 중심이 바로 서원이었다.

김광계도 도산 서원의 원장을 역임하면서 예안이라는 지역 사회를 이끌었다.

조선 후기 일기를 읽어보면 문과에 급제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듯하다.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말로 바늘귀 같은 좁은 문을 통과했던 사람들인가 보다.

이 공론을 이끌기 위해 양반들은 접빈객이 일상화 됐다.

사대부가 여자의 가장 중요한 일이 접빈객 봉제사라고 하더니만 일기를 보면 과연 그렇다.

거의 매일 손님이 오고 제사를 지낸다.

시장이 활성화 되지도 않았을 때라 손님이 오면 집에서 술을 담그고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해야 했으니 매일 같은 손님 접대가 주부 입장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고 상당한 재물이 아니면 지역사회에서 위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음풍농월로 놀려고 손님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사교 과정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공론을 만들었던 것이다.

역시 역사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모양이다.

하층민들의 일상은 글로 남겨진 게 없어 생활상을 재구성하기 어려우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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