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이근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책 검색하다가 추천마법사에 있길래 문득 궁금해져 다시 읽게 됐다.

2007년에 썼던 리뷰가 있다.

오래 된 책이라 다소 지루한 느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사라는 좀더 넓은 안목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인가 보다.

저자는 삼국사기의 예를 들어, 김부식이 역사서를 편찬한 까닭은 오늘날처럼 실증사학의 관점에서 쓴 것이 아니라, 왕에게 귀감을 보여주기 위해, 즉 교훈을 주기 위해 서술했음을 밝힌다.

쓰는 목적이 감계와 포폄을 위함이었으니 사료비판이 매우 중요하고 고고학적 증거도 반드시 첨부해야 비로소 당시 사회상이 입체적으로 그려질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도 학문으로서의 역사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찬란한 과거를 밝히고 자부심을 주기 위한 목적은 아닐까?

고대의 영광을 찬양하고 더 나아가 마치 만주를 잃어버린 우리 땅, 수복해야 할 우리의 고토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책을 보면 결국은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설의 한국 버전이 아닐까 싶다.

사대주의 관점에서 역사서를 썼다는 김부식을 비판할 것도 없이, 우리 역시 근현대사를 자신들의 정치척 이해관계에 맞춰 서술할 뿐 과연 학문적인 입장의 서술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유독 식민지 치하와 해방 이후 역사만 강조하는 정치적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여러 흥미로운 주장들이 많았다.

1) 일본서기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임나일본부설 등을 이유로 일본서기의 정확성을 의심하면서 정작 백제에서 유교나 불교를 전해준 사건 등은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원하는 결과만 취사선택하는 셈이다.

근초고왕의 영산강 유역 남정 역시 일본서기에만 나오는데 목라근자 등이 일본의 군사를 데리고 와서 남부 경략을 했다고 기록에 있는데도 주체가 백제 왕실이었을 것이다고 편의대로 해석해 버린다.

고고학적 증거로 봐도 백제가 영산강 유역을 정복한 것은 6세기였으리라 생각된다.

한쪽은 기록을 남겼고 한쪽은 당시 기록이 전혀 없으니 고고학적 증거라도 있어야 주장을 할텐데 그마저도 불리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해석이 맞는 것인지.

고대인들이 과학적 태도로 역사를 연구해서 서술한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언론을 통해 정치 상황을 잘 알 수도 없었을테니 어떤 의도로 기술했는지 사료비판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관된 태도는 취해야 할 것 같다.


2) 책을 읽으면서 제일 흥미로운 주장이었는데, 백제가 왜에 불교와 오경박사 등을 전해준 것이 양 무제의 영향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 준 왕인마저 양나라 사람일 수도 있다고 추론한다.

천자문 자체가 양나라 때 처음 간행된 것이므로 왕인은 4세기 사람이 아니라 6세기 사람일 걸로 추정하고, 후손들이 조상의 기원을 멀리 잡기 위해 늘려 놨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부분도 좀 이해가 안 가긴 했다.

후손이 그냥 200년을 늘려 버린 걸까?

좀더 실증적인 증거가 필요할 것 같다.

무령왕 당시의 양나라와 문화 교류는 무령왕릉의 전축분을 통해 익히 알려졌다.

양 무제는 50여 년을 재위하면서 주변에 불교와 유학을 널리 전파했고 백제에도 경전박사들이 많이 건너왔는데 일본의 요청에 의해 열도로 건너갔으리라 추정한다.

오경박사들의 성이 고씨, 단씨 등 중국성임을 근거로 든다.

가능성이 있지만 좀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러니 일본에서도 한반도는 건너 뛰고 중국의 영향만 강조하는 모양이다.


3) 또 흥미로운 것, 무령왕의 아버지 문제

삼국사기에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인 곤지의 손자로 나온다.

일본서기에는 곤지가 개로왕의 형제이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임신한 형수를 아내로 달라 하여 태어난 이가 무령왕이라 한다.

출생년도 등을 고려할 때 무령왕이 개로왕의 증손이라기 보다는, 아들 쪽이 더 신뢰가 간다.

그런데 임신한 형의 아내를 달라는 건 좀 이상하다.

저자는 무령왕이 곤지의 적자인 동성왕의 배다른 형제라는 다른 기록을 증거로 삼아, 살해당한 동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령왕이 자신의 혈통을 강화시키기 위해 개로왕의 아들이라 자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모계의 격이 떨어지고 한성백제의 정통인 개로왕의 직계임을 내세워 권위를 높이기 위한 방책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 있는 추론 같다.

그렇다면 무령왕은 동성왕과 이복형제이고 곤지의 아들이자 개로왕의 조카인 셈이다.


민족주의적인 관점에 함몰되지 않고 보다 넓은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우리 고대사를 바라본 점이 신선했다.

역사가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한 선동이 아니라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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