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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풍경과 사유 - 한국고대사의 경험과 인식 ㅣ 학문의 이해 3
이강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기대가 되는 제목과는 달리 좀 지루했다.
고대인의 사유체계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데 삼국사기 같은 사료를 성실히 분석하는 수준이라 특별히 다른 관점을 얻지 못해 알고 있는 지식의 반복 느낌이다.
다만 고대인들이 사서를 기록할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긴 했다.
오늘날처럼 역사서를 쓸 때 원인과 결과, 배경에 대해 깊이 고찰하기 보다는 하늘의 뜻이 인간사에 반영된 것은 아닌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유교적 기준에 합당한지에 중점을 두고 기술하다 보니 요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료 비판이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일식이나 혜성 같은 자연현상 등을 열심히 기록한 것도 17세기 서구처럼 과학적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천재지변이 인간사에 보내는 하늘의 메시지라는, 천인상관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료에 나온 기록들을 너무 자연주의 관점에서만 해석해서는 진짜 본질을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왕조가 멸망하려면 하늘도 왕을 버렸을 것이라는 게 당대인들의 생각이니 그 징조를 자연에서 찾는 식이다.
그렇다면 설화는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설화에 드러난 당시 생활상에 중심을 둬야 할 것 같다.
저자는 건국 시조들의 여러 이적들에 대해, 아마도 고대인들이 자연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당시로서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에 대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오랜 전승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론한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읽고자 하는 철학적 관점에서 자연을 본다면 기적들이 과연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적들이 왜 현대에는 안 일어나냐는 질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결국 사서란 고대인들의 가치체계에 근거해 기술한 것이고 전승 과정에서 많은 변형이 이뤄졌을테니, 올바른 역사 이해를 위해서는 고고학적 유물과 대조해 봐야 할 것 같다.
물질자료 자체가 역사적 의미를 바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고, 또 사서에 기록됐다고 해서 사실 자체는 아니니 결국 사서의 내용을 고고학적 유물로써 뒷받침 될 때 비로소 완벽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형사취수혼은 유목 사회에서 혼자 된 형의 아내를 부양하기 위한 제도인데, 자매끼리 연이어 결혼하는 것은 뭔가 궁금했었다.
책을 보니 이런 제도를 자매역연혼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혼인은 집안끼리 일종의 동맹을 맺은 것이라 시집보낸 딸이 죽으면 다시 자매나 조카를 그 집안으로 보내 관계를 존속시킨다.
특히 아이를 낳지 않고 사망하게 되면 남자 집안에 생산을 못해 준 것이므로 이어서 다른 자매를 다시 보내주는 것이다.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집안과 혼인을 맺느냐가 중요한, 집단적인 결속의 과정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홍타이지의 첫번째 부인 역시 아이를 못 낳자 그 조카가 다시 시집와 순치제를 낳았던 것 같다.
개인 사생활의 발명은 지극히 근대적인 관점이라가고 하더니만 과연 그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