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 야훼 - 역사와 그의 실체
김기흥 지음 / 삼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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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이어 내 기독교적 회의감에 쐐기를 박는 또 하나의 책이다.

저자는 신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닌, 신라사를 전공한 한국 역사학 교수인지라 이스라엘 역사와 유대교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전문성을 가질런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인용된 자료들이 최근 고고학 성과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신뢰감이 생기고 무엇보다 저자의 논증과 문제제기에 깊이 공감했다.

저자는 시종일관 야훼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이고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약소 민족으로서 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민족의 통합을 위해 야훼 신앙을 다지고 특히 바빌론 포로기 시절 이방인으로까지 신에 대한 관념이 확대되어 우주 전체의 창조자 유일신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 중동의 강대국들 틈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 신앙 아래 단결했다.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명멸했으나 수천 년의 디아스포라 끝에 살아남아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의 야훼 신앙은 참으로 놀랍다.

저자는 이러한 신앙이 처음부터 유일신 형태가 아니었고 여러 신들 중 하나를 이 약소 민족이 선택하여 보편적 창조주로써 변모해 가는 과정을 논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

1) 유대인은 기원전 13세기 무렵 이집트의 압제에 시달리던 가나안 하층민들이 철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앙 고원지대로 모여들어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민족으로 변모해 갔다.

저자는 핑컬스타인의 최소주의설을 받아들여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출애굽도 부정하고 당연히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도 없었으며 기원전 10세기 무렵 솔로몬 성전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나도 핑컬스타인의 책을 읽고 출애굽의 실체에 대해 부정하게 됐다.

고고학적 증거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그 때는 다 이해를 못했었는데 확실히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알려준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는 산간 지대로 올간 가나안 토착민들이었던 셈이다.

람세스 2세의 아들인 메르넵타 석비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명이 나오므로 이 무렵 이방인들에게 하나의 민족으로서 인식되었다고 본다.


2) 북이스라엘은 당시 유행하던 가나안의 황소 신상을 야훼의 표상으로 경배했고 남유다에서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내세웠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먼저 멸망하자 거기서 내려온 제사장들과 남유다의 왕들은 자신들에게 정통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들이 우상숭배 때문에 망했다고 천명한다.

유다 왕국은 이집트와 바빌론 등 외부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종교 개혁을 하고 기원전 7세기 무렵 요시아왕 때 신명기가 저술된다.

그 후 바빌론 유수 때 모세 오경이 완성됐다고 본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등이 섞여 있고, 성경의 저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히기 보다는, 야훼 신과 언약을 맺고 애굽을 탈출했던 것처럼 바빌론으로부터도 해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을 썼다.

그러니 21세기에 당시 중동인의 관점에서 본 천지 창조설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은 넌센스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야훼라는 유일신이 객관적인 실제가 아니라 관념의 신이고 상호주관적인 신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약소 민족인 이스라엘인들이 거대한 제국의 압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내부 결속을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관념적 실체가 바로 신이고, 그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해 왔다.

예수 탄생 후 삼위일체라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를 접목해 보다 보편적인 종교로써 전 세계에 퍼지게 됐지만 과학의 시대에 더이상 문자 그대로의 성경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종교는 인류가 발전시키고 쌓아온 문화와도 같아 인류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화해 왔으므로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가치의 총합을 바로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관념적 존재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비단 기독교에만 신의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가톨릭의 보편성이 좀더 바람직한지도 모르겠다.

21세기에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과연 한국 기독교가 현대인들에게 바람직한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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