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노태돈 지음 / 경세원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읽었을 때는 국사책인가 싶을 정도로 지루했는데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쌓인 후에 다시 보니 일목요연하게 한국 고대사를 잘 정리해 놨고 무엇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명확히 입장을 밝혀서 참 좋다.


1) 고조선의 기원은 언제인가?

기원전 7세기 무렵 책이라는 <관자>라는 문헌에 처음 등장했는데 실제로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때 썼을 걸로 생각한다.

또 산동 반도에 기후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 예기를 기자동래설의 근거로 삼기도 하지만, 상주 계통의 청동기와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이 같이 발견되는 지역이 없고 이 명문은 하북 등지에서도 출토됐기 때문에 고조선과는 관계없는 상의 씨족으로 생각한다.

기자동래설이 처음 생겨난 시점이, 낙랑군이 세워질 무렵이라 한인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한 전승이었다고 추정한다.


2) 고구려의 조상은 누구인가?

이주민이 세운 집단이라기 보다는, 신석기 시대부터 압록강 주변에 터를 잡고 살던 토착민과 부여에서 넘어온 일부 집단이 합해져 중국 군현과의 갈등 속에서 성장한 나라라고 본다.

5세기 무렵 동부여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해모수 설화가 주몽 설화에 더해져 시조 전승을 이루게 됐다.

그런데 저자는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 왕실에 기원을 둔다고 했지만, 다른 책에서는 단지 부여가 오래 된 국가였기 때문에 그 명성을 이용하려는 시도였다는 주장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유이민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구려는 모르겠는데 백제는 생각해 볼 주제 같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백제가 기원전후 세워졌다고 보기에는 고고학적 증거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국지에 기록된 3세기 무렵 대방군과 마한의 전투인 기리영 전투를 근거로, 당시 임금인 고이왕 때를 백제의 시원으로 추정한다.

다른 기록에 전하는 백제의 시조 구태가 바로 고이왕일 가능성도 제시한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늦춰야 한다는 수정론과 일맥상통 하는 얘기 같아 흥미롭다.


3) 임나일본부는 중앙집권국가의 공적인 기구가 아니라 민간의 교류 집단이다.

당시 한반도와 왜의 물적 교류가 매우 활발했던 모양이다.

일본열도의 철 수입을 한반도의 가야에서 담당한 만큼, 안정적인 교역을 위해 파견된 집단이 바로 임나일본부이고 당시 정식명칭은 '재안라왜신등'이라고 한다.

안라에 머무는 왜인들이라는 뜻이므로 영토 지배는 훗날 일본서기가 작성될 무렵의 역사 인식에 불과하다고 본다.

4세기 무렵 백제의 요서 경략이 문헌 기록에 있을지라도 물적 근거가 부족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과 비슷한 개념 같다.

그런데 훗날 일본은 통일신라와 교류하면서 칭신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는 일본을 이웃국으로 대했으나 일본은 번국으로 대우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8세기에 안사의 난으로 당이 주변국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이 신라 원정 계획까지 세웠다니 놀랍다.

중국에 조공하는 구체적인 사대 관계는 아니었겠으나 고대사에서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가 지금 우리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아 흥미롭다.

일방적으로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 주는 상국 개념으로 이해해 왔는데 고대사를 살펴 보면 일본에 군사 원조 요청도 많이 했고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고구려에서 남정도 했던 걸 보면 오늘날의 인식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4) 발해는 고구려의 나라인가 말갈의 나라인가?

저자는 발해가 처음부터 고구려 후예와 말갈인을 구분하는 이중정책을 써 왔고 훗날 거란이 점령한 후에도 두 민족을 분리해서 이주시킨 것으로 보아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진 나라로 생각한다.

오히려 신라에서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주장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말갈의 나라임을 강조했다.

건국자인 대조영은 <신당서>의 기록처럼 속말말갈인일 수 있으나 고구려에 오래 전에 동화되어 지배층은 고구려 출자 의식을 분명히 했음을 밝힌다.

합리적인 추론 같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재독하니 정말 재밌고 노학자의 일목요연한 논지 전개에 감탄하는 바다.

무엇보다 과격하고 무리한 추론이 없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