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 포츠담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 5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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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이 시리즈를 다 읽고 있다.

여행서로서는 인문학적 예술적 내용이 많아 기획 의도는 신선하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감상하기 좀 어려운 수준이지만 전체적으로 도판의 질은 괜찮은 편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인데 왜 바로 가는 직항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책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다.

분단 시기 동안 서독의 중심지가 아니었고 1990년 통일 이후에 비로소 수도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를린은 박물관섬이라는 훌륭한 미술관들이 있어 꼭 가 보고 싶은 곳이다.

통일 후 여러 새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 보는 즐거움이 있는 듯하다.

벌써 통일을 이루고도 30년이 다 됐다니, 우리로서는 부러운 나라다.

과연 북한의 세습왕조는 무너질 수 있을까?

중국이 뒤를 봐 주고 있으니 소련이 무너진 후 독일이 통일된 것처럼 중국 공산당이 무너지지 않은 이상 통일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25p

예술은 문명 속에 있고 대부분의 문명은 도시에서 피어나니, 결국 '좋은 도시'는 대부분 예술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 즉 풍성하고 다양하게 발전한 도시가 예술의 도시가 되는 것이다.

 시민계급이 형성된 이후로 예술의 주도권은 궁정의 성벽을 넘어서 도시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그 후로 도시의 품격은 물론이고 도시의 기능과 규모 역시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니 사실 그 나라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도시란 곧 최대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 런던, 파리, 로마, 빈, 뉴욕, 도쿄 다 그러하지 않은가? 물론 큰 도시는 아니더라도 유달리 예술의 비중이 강하고 예술에 의존하는 도시들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예술은 풍성한 생산력의 바탕에서 꽃피우는 것이니,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80p

니도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민중예술을 접했지만, 거칠고 투박한 민중화들은 솔직히 내 심장을 흔들지 못했다. 그렇게 80년대가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참여미술도 함께 시들어갔다. 나에게 민중미술의 기억을 되살려준 것은 콜비츠 미술관이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80년대 민중미술에서 감동할 수 없었던 나는 3층까지 가득 채운 그녀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우리의 민중 미술은 그러지 못했을까? 그것은 테크닉의 부족이었고, 진실함의 부족이었으며, 인류애의 부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30년 전에 콜비츠를 만났다면, 내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을지 모른다.

(예술의 보편적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예술로 남지 못하고 사라진 것은 구호가 훌륭하다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이 어떤 내용을 주장하든 내용과는 상관없이 관람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예술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류>

112p

<두 공주> 이 2중 초상 조각의 주인공은 프로이센의 프리데리케 황태자비와 그녀의 동생으로 역시 왕자비가 되는 루이제 자매다.

-> 황태자비가 훗날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왕비가 된 루이제이고 여동생이 프리데리케이다.

271p

이 교회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선친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어서

-> 빌헬름 2세의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3세이고, 빌헬름 1세는 할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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