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일기를 읽다 - 레이 황의 중국 근현대사 사색
레이 황 지음, 구범진 옮김 / 푸른역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너무 재밌으면서도 어렵고 지루했다.

6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때문에 걱정한 것에 비해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잘 읽힌다.

저자의 다른 중국 역사책도 워낙 재밌게 읽은 터라 기대했던 만큼 아주 흥미로웠고, 그럼에도 중일전쟁 당시를 너무나 세세하게 마치 르포처럼 재구성하고 있어 진도 나가는데 애를 먹었다.

내가 중일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동아시아 전구로 파견된 미국 쪽 사령관이었던 스틸웰과 장제스의 갈등은 백여 페이지 이상 길게 서술되어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가, 따로 찾아보기까지 했다.

저자가 일목요연하게 전쟁의 개요와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보다는, 장제스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전쟁 상황을 서술하다 보니 나처럼 전개 과정을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종횡무진 왔다갔다 하는 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구글에서 검색을 했더니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책이 나오는데, 어이없게도 이 책을 거의 번역하는 수준이었다.

문장의 토씨까지 비슷하고 이야기 순서도 거의 일치해 어이없었다.

알라딘에 버젓히 한국 저자가 쓴 책으로 올라와 있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저서가 아니라 편집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줄곧 장제스가 중세 농업국가였던 중국의 상층 구조를 새로 조직해 일본과 8년 동안 싸웠고 그 과정에서 숱한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한다.

저자가 밝힌 바대로, 이 책은 장제스라는 인물의 도덕적 포폄을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고 왜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는지를 밝히기 위한 책이니 나는 저자의 역사 서술 방식에 공감하는 바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역사책들은 역사적 인물의 도덕적 평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은 반면, 서양에서 나온 책들은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 훨씬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권력의지가 강한 자는 도덕적이기 어려운 것 같다.

중국은 중세 봉건국가에서 이제 막 근대 국가로 변신하는 상황이었고 일본이라는 적을 맞아 싸우는 과정에서 서양이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체계를 20여 년 만에 급조해서 세워 놓고 투쟁했다.

장제스는 처음부터 일본이 전면전으로 나와 버티고 있으면 미국을 끌어들여 국제전으로 나가길 희망했고 그 바램대로 흘러가 중국은 4대 연합국 열강의 위치를 획득했으나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중국 인민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안겨줬다.

저자는 장제스를 항일전쟁의 영웅으로 평가하고 이런 점이 무척 신선했다.

장제스라고 하면 공산당 때려 잡느라 일본과의 전쟁도 내팽개친 반공주의자로 알고 있었던 탓이다.

전쟁 후 어떻게 대륙에서 쭃겨나는 과정이 더 궁금했는데 소략되어 아쉽다.

역사적 평가를 후대인이 단정적으로 가볍게 내린다는 것은 참 어리석고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장제스 보다는, 오히려 1920년대의 중국이 어떻게 근대 국가로 변모해 왔는지 당시 중국이 어떤 사회구조였는지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고 한국 역시 급작스런 근대화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단순히 비난만 해서는 역사로부터 얻을 게 없다는 걸 느끼는 바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원래 저자 스타일이 직설적이기 보다는 화자를 밝히지 않은 채 간접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던 것 같다.

저자가 젊은 시절 항일전쟁 당시 10년 씩이나 중국군의 장교로 근무했다는 독특한 이력도 책의 서술을 풍성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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