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구범진 지음 / 까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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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두꺼워서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고 재밌게 잘 읽었다.

한명기 교수의 병자호란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오래 전에 읽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중심 주제가 인조반정 후 갑자기 대청정책이 바뀐 게 아니라 광해군 시절부터 조심스럽게 지켜가고 있던 줄타기 외교를, 홍타이지 즉위 후 청이 형제 대신 칭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자호란이 일어났다는 얘기였다.

즉, 조선은 명과 청 사이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나름 잘 처신하려고 애를 썼으나 청나라가 황제국이 되면서 조선을 신하로 두겠다고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전쟁이 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미련해서 망해가는 명나라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책에서도 병자호란은 조선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홍타이지의 정책 변화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강화도로 피난을 갔어도 명을 집어삼킨 청의 국력으로 봤을 때 곧 함락됐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자의 상세한 분석을 읽어보면 강화도로 옮겼을 경우 좀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홍타이지는 서울로 진격하여 최단시간에 조선의 항복을 받아내는 전략을 취했다.

청의 군사력에 비해 열세였던 조선은 산성으로 들어가 버티는 작전을 폈는데, 정묘호란 때와는 달리 청나라 군사들은 거점을 확보하려 하지 않고 수일 만에 서울로 진격하는 바람에 인조는 강화도로 들어갈 시간을 놓쳐 급한대로 남한산성으로 간다.

산성에서 항쟁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기 때문에 함경도와 평안도의 군사들이 죄다 산성에 들어가는 바람에 청나라 군사들은 교전 한 번 없이 서울로 들이닥쳤다.

남한산성이 나름 방어 요새를 잘 갖춰 홍타이지 역시 함락하기까지 수 개월을 예상했으나 뜻밖에 협상이 성립되어 전쟁이 50여 일 만에 끝나버린다.

전국의 근왕병도 다 물리치고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홍타이지가 친정까지 하면서 공을 들인 전쟁을 쉽게 마무리진 이유에 대해, 저자는 천연두를 꼽고 있다.

청나라 사람들은 마치 신대륙의 원주민들처럼 천연두에 취약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들인 순치제도 24세의 젊은 나이에 천연두로 사망하고 만다.

조선에 천연두가 돌기 시작하자 그동안의 압박 정책을 풀고 신속히 항복을 받아낸 뒤 곧 철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확실한 사료가 나온 것은 아니고 저자가 여러 정황을 들어 주장하는 부분이라 다른 책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나오게 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강화도 함락이었다.

여기서도 저자는 당시 강화도를 지킨 장수들이 태만하여 함락된 것이 아니라 적은 병력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도해 지점에 전군을 결집시켰으나, 청나라 군사가 의외의 장소로 도해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이다.

분노를 자아낸 김류의 아들 김경징에 대한 사형은 군사적 실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처결이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이런 설명이 더 합리적인 것 같기는 하다.

어느 지점으로 상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준 사람에 대해 저자는 향화호인, 즉 귀순한 여진인들을 꼽는다.

이것도 딱 매칭하는 사료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저자가 여러 정황을 통해 추론한 사실인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병자호란을 겪고도 조선이 300년이나 유지됐던 이유가, 요즘 용어로 헬조선 수준이 아니고 상당히 강력한 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방어를 못했다고 욕을 먹는 김자점도 저자의 변론에 따르면 자기 위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어떤 장수들도 제멋대로 도망치지 않고 정해진 메뉴얼에 따르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청나라가 너무 강했고 무엇보다 홍타이지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조선 왕의 항복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쳐들어 왔기 때문에 조선으로서는 중과부적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송나라의 황제가 금나라로 끌려가고 나라가 망해 버린 정강의 변 꼴이 날 수도 있었는데 조선 왕실로서는 나름대로 잘 협상하여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로서는 척화신들의 주장대로 끝까지 농성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출성 후 홍타이지에게 우호적인 대우를 받아 종묘사직을 계속 이어갔으니 패전의 군주치고는 그럭저럭 잘 마무리를 지었던 셈이다.

당대인의 관점으로 보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 설득력이 있고 흥미롭게 잘 읽었다.

역사는 결과만 놓고 가볍게 단죄하기 참 어려운 문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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